- “그간 받은 고마운 마음 나누고파”

“삶의 마지막 순간 제가 받은 온정을 주변의 어려운 분께 나눠드리고 싶었습니다.” 한해가 마무리되는 지난달 31일 삶의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는 부산 부산진구 온종합병원 13층 호스피스 완화 병동에서는 조촐하지만 숙연한 행사가 치러졌다. 이날 대장암 말기 환자인 조모(여·62) 씨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환자를 돌보는 데 써달라며 현금 1000만 원을 ㈔한국기독호스피스협회에 기부했다.

지난달 31일 부산 부산진구 온종합병원 호스피스완화병동에서 조모 씨가 병원, 한국기독호스피스협회 관계자와 기부금 전달식을 하고 있다. 온종합병원 제공

오랜 투병으로 조 씨의 얼굴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해맑게 웃고 있었다. 협회 정근 이사장이 말기암 환자의 깡마른 손에 감사장을 쥐어주며 “귀한 뜻을 소중하게 쓰겠다”고 인사말을 건넸다. 조 씨는 “참 좋은 일 많이 하시대요”라며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곧 이어 병원 권용수 원목이 “남아 있는 날 내내 축복 받는 삶을 사시라”고 기도문을 외자 조 씨는 눈을 감고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조 씨는 30년 전 대장암이 발견돼 완치됐으나 2015년 재발하면서 지난해 11월 20일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했다. 일찍 이혼하고 부산진구에서 자식 없이 탁구장을 운영하며 독신으로 살아온 탓에 50대 여동생 외에 조 씨를 돌봐줄 가족이나 친지가 없었다. 다시 찾아온 병마와 ‘절대고독’ 앞에서 조 씨는 병상 세례를 받았고, 이후 주변의 도움으로 절망의 늪에서 헤쳐나올 수 있었다. 지역 교회 5곳의 자원봉사자가 매일 병실을 찾아와 마사지 등의 병 간호와 말동무, 노래, 기도 등을 통해 조 씨의 지친 심신을 달랬다.

악화되는 병세와 달리 조 씨는 나날이 편안한 마음을 되찾았고, 자신이 받은 온정을 이웃과 나누기로 마음 먹었다. 그는 애초 자신을 도운 교회에 기부할 의사를 보였으나 주변의 권유로 병원 내 누가교회를 통해 지난달 28일 1000만 원의 거금을 ㈔한국기독호스피스협회에 전달했다. 자신처럼 삶의 막바지에 병마와 경제적 어려움에 시름하는 이들을 돕는 데 귀한 돈을 쓰자는 취지에서다. 조 씨는 또 자신을 돌봐준 교회 5곳에도 100만 원씩 헌금을 통해 고마운 마음을 전달한다. 조 씨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헌금은 권 원목이 이달 5곳 교회를 돌며 직접 전할 계획이다. 조 씨의 여동생도 헌금을 봉투에 직접 넣으며 언니의 ‘온정 나눔’을 도왔다. 동생 조 씨는 “마지막 가는 길에 언니가 원하는 대로 사회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 씨는 현재 식사와 영양제 처방 등의 연명치료 없이 기력이 쇠한 상태에서 통증 조절만 하고 있다. 하지만 마음 만은 누구보다 평안한 상태라고 한다. 조 씨는 “기력이 없어서 쉬고 쉽다”면서도 “저처럼 육체·경제적으로 어렵고 연약한 분을 위해 기부금이 사용되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병원 관계자는 “환자가 바라는 건 오로지 종교적 안식”이라며 “떨쳐낸 고통의 자리를 사랑과 평온으로 가득 채운 그에게 경자년이 더 길게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이승륜 기자 thinkboy7@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