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대학이 지역 혁신 및 발전의 마중물 역할을 합니다.

세계적인 도시 중에 세계적인 대학을 보유하지 않은 도시는 없습니다. 미국 뉴욕에 컬럼비아대와 뉴욕대, 보스턴은 하버드대와 MIT, 샌프란시스코는 버클리대와 스탠퍼드대, 시카고는 시카고대와 노스웨스턴대, LA는 UCLA, USC, 칼텍 공대 같은 세계적인 대학이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는 파리 대학과 그랑제꼴, 영국 런던은 런던대, 런던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킹스 칼리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산은? 서울을 제외한 부산과 광주 등 지방 도시는 창조계급을 길러낼 수 있는 서울대 같은 대학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서울로 인재, 돈, 인프라, 학원이 모두 몰립니다. 그 부작용으로 대학병목과 공간병목이 일어나고 최악의 ‘교육지옥’이 생깁니다.

세계적 도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는 자신의 저서 『도시는 왜 불평등한가』(매일경제신문사)에서 창조계급(Creative Class)은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마크 저커버그 등 첨단 지식과 기술로 대표되는 계층이며 경제와 문화를 선도하는 계층이라고 설명합니다.

●도시 성공의 열쇠는 인재·대학에 대한 투자

플로리다 교수는 도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아니라 인재를 끌어들이고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도시의 성공 열쇠는 기업을 유치하는 것이 아니라 인재를 끌어들이고 유지하는 것이다. 창조계층을 구성하는 지식 노동자, 교사, 예술가와 그 이외 다양한 문화적 창조활동가는 고임금 일자리가 많거나 노동시장이 두터운 곳, 또는 만나서 데이트할 사람이 많은 곳, 즉 이른바 짝짓기 시장이 크거나 활기찬 장소, 그리고 훌륭한 레스토랑과 카페, 음악 공간, 그 이외 해볼 만한 것이 많은 곳에 거주하고 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살림터)의 저자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플로리다 교수의 지적처럼 부산이 도약하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대학을 만들어 인재를 모으고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물결에 올라타서 이를 주도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김 교수는 “스탠퍼드대학과 실리콘밸리 모두 초라하게 출발했다. 이들의 글로벌 부상의 시작은 대학과 인재에 대한 투자였다”(257쪽)고 설명합니다.

부산대 통일한국연구원은 지난달 27일 김종영 교수를 초청해 ‘국가균형발전과 대학혁신정책 대토론회’를 열고 김 교수가 주창하는 ‘서울대 수준의 연구중심대 10개 만들기’ 전략과 방안에 관해 심도 있게 논의(국제신문 지난달 28일 자 1·6면 보도)했습니다. 이날 토론회에는 차정인 부산대 총장, 홍원화 경북대 총장, 박형준 부산시장, 배재한 국제신문 사장 등 교육계는 물론 지역 정치권, 언론계 주요 인사도 참석해 대학 혁신에 높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국제신문 1월 28일 자 1면 보도

1월 28일 자 6면 보도

1월 28일 자 6면 보도(인터뷰)

서울대 10개 만들기

도시는 왜 불평등한가

●서울대 10개 만들기 전략

김종영 교수는 ‘교육지옥’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서울대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을 전국에 10개 만드는 것은 “단지 지위권력의 평준화뿐만 아니라 연구중심대학이라는 창조권력을 전국적으로 다원화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다”(61쪽)고 제시합니다, ‘서울대 10개로 구성된 대학통합네트워크’는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체제를 벤치마킹한 겁니다. 캘리포니아 대학체제는 10개의 연구중심대학, 23개의 교육중심대학, 116개의 직업중심대학의 3중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김 교수는 서울대를 폐지하자는 것이 아니라 서울대를 그대로 두고 지방거점국립대학을 중심으로 권역별로 서울대 수준의 연구중심대학 10개를 육성하자는 전략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는 “뺄셈의 정치가 아니라 덧셈의 정치”(320쪽)라고 역설합니다.

파리1대학~파리13대학의 프랑스 대학 모델이 아니라고 김 교수는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캘리포니아 모델은 지위권력의 상향평준화와 창조권력의 다원화를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64쪽)이라고 합니다. 연구중심대학은 세계 지식 생산을 선도하고 글로벌 영향력을 행사하며 대규모 연구와 실험을 수행할 수 있어서 연구중심대학은 곧 창조권력입니다. 연구중심대학을 목표로 잡아야만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대학 개혁과 글로벌 시대의 경쟁력 강화”(232쪽)라는 정당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

●칼텍과 스탠퍼드의 교훈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 또는 Cal Tech)은 1891년 캘리포니아 패서디나라는 작은 도시에서 스루프 공과대학(Throop Polytechnic Institute)으로 설립된 직업전문대학이 모태입니다. 1920년 MIT를 모델로 캘리포니아 공대로 이름을 바꿨고 1921~1945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밀리컨이 총장을 맡은 동안 록펠러재단, 카네기재단 등 사립 재단으로부터 거액의 연구비를 지원받아 잠수함 탐지기 개발을 비롯해 20여 개의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하면서 세계적인 공대로 급부상했습니다. 이 대학 노벨상 수상자만 40명입니다.

실리콘 밸리를 낳은 스탠퍼드대 역시 한때는 이름 없는 ‘듣보잡’이었습니다. 이 대학 프레드릭 터먼 공대 학장이 한정된 자원으로 모든 분야를 발전시킬 수 없다고 판단해 당시 새로운 떠오른 전자공학과 라디오공학 분야를 특화해 미국 최고로 만들었습니다. 특히 터먼 학장은 대학을 중심으로 한 산업단지 건설을 구상하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신의 한 수였습니다. 1955년 IBM이, 1956년 록히드 항공연구시설이 들어서고 이후에 세계적인 기업의 연구소가 이 산업단지에 세워졌습니다. 김 교수는 “대학이 단순히 학생을 길러내는 곳이 아니라 산업을 연결시킨 창조의 위대한 공간이 되는 순간이었다”(252쪽)고 의미를 부여합니다.

칼텍(캘리포니아 공과대학)과 스탠퍼드의 부상은 우리에게 몇 가지 시사점을 줍니다. 첫째, 지방대도 서울대가 될 수 있습니다. 지방대가 서울대가 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의 장기간 투자 ▷대학 구성원의 뼈를 깎는 노력 ▷세계 최고를 향한 집념 ▷산학관 네트워크 구성 ▷과학기술을 산업화할 수 있는 전략 등입니다, 둘째, 무엇보다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축적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방대를 바로 서울대로 만들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칼텍은 10년 걸렸고 스탠퍼드는 25년 소요됐습니다. 서울대 10개 만드는 데는 최소한 1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또한 정부의 장기간 투자가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김 교수는 정부와 기업이 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인재를 끌어모은 카이스트, 포스텍, 유니스트(울산과학기술원)를 성공 사례로 듭니다. 한국에서 이들 대학을 아무도 지방대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국립대 통합 최초 설계자는 경상대 정진상 교수

대학통합네트워크에 관한 최초의 체계적인 구상은 2004년 경상대 사회학과 정진상 교수가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입시지옥과 학벌사회를 넘어서』(책세상)에서 제시했습니다.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대학개혁연구팀’과 협업을 통한 성과물이었습니다.

정 교수는 대학 서열체제를 혁파해야 하는 이유를 아래와 같이 제시했는데, 18년이 지난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게 김종영 교수의 견해입니다.

“대학 서열체제로 인한 학벌주의는 국민들의 가슴속에 빗나간 우월감과 절망적인 열등감을 재생산하고, 명문 대학의 동문 패거리는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고 있다. 막대한 사교육비를 동원한 점수 따기 경쟁은 계급 재상산의 기제로 작용하며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은 서민들의 생활을 질을 떨어뜨리고 노동자들에게 초과 노동을 강요한다. 또 수도권 대학과 지방 대학의 서열화로 인해 지역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김 교수는 정 교수의 안과 관련, 지위경쟁이론(학벌체제)과 병목에 관한 문제의식(서울 집중)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창조권력(연구중심대학), 예산 격차에 관한 내용이 없다고 지적합니다. 서울대는 2020년 기준 1조5394억 원 예산 규모의 연구중심대학인 반면 경상대는 2619억 원에 불과한 지방거점국립대학입니다. 서울대와 지방대의 차이는 상당 부분 예산 격차에서 비롯됐다는 게 김 교수의 분석입니다. 부산대는 7844억 원, 경북대는 5806억 원, 전남대는 5289억 원으로 서울대와 큰 차이를 보입니다. 김 교수는 서울대와 9개 지방거점국립대 간 지원금 격차에 해당하는 연간 3601억 원을 이들 지방거점국립대에 투자하면 10년 안에 연고대 수준의 대학이 될 수 있다고 전망합니다.

앞서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강준만 교수도 1996년 『서울대의 나라』(개마고원)를 통해 서울대의 지위권력 독점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했습니다.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서울대의 나라

서울대 정문. 국제신문DB

부산대 정문. 국제신문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