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이한탁 씨가 딸 살해혐의로 체포되던 모습. 주미 한국일보 홈페이지 사진 캡처

- 120일 내 재기소 없으면 석방

친딸 살해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해온 이한탁(79) 씨가 유죄평결 25년 만에 '자유의 몸'이 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연방중부지방법원 윌리엄 닐런 판사는 8일(현지시간) 이 씨에게 내려졌던 방화·살해 혐의에 대한 유죄평결과 가석방 없는 종신형 선고를 무효화한다는 판결을 내렸다고 AP통신 등 미국 언론이 전했다.

닐런 판사는 검찰이 이 씨를 앞으로 120일 안에 재기소하거나 아니면 석방하라고 명령했다. 1989년 발생한 사건에 대해 검찰이 새 증거를 제시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여 이 씨는 누명을 벗을 것으로 기대된다.

법원이 유죄평결을 무효화한 것은 지난 5월 이 씨의 재판에 대한 유효성을 가리기 위해 열린 법원의 '증거심리'에서 검찰이 자신들의 증거가 과학적이지 못했음을 시인했기 때문이다.

증거심리를 주재한 마틴 칼슨 예심판사는 본심 판사에게 전달한 권고문에서 "25년 전 이 씨의 유죄 판결을 가능하게 했던 방화 수사 증거가 비과학적이고 지금의 수사 기준으로는 인정될 수 없다"며 "그의 형벌과 유죄판결은 무효화돼야 하며, 검찰의 재기소가 없으면 이 씨는 석방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 씨의 변호인인 피터 골드버그는 다음 주 이 씨에 대한 보석을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이변이 없는 한 이 씨는 올해 안에 출소할 수 있을것으로 보인다.

이 씨의 악몽은 1989년 7월 새벽 펜실베이니아의 한 교회 수양관에서 발생한 화재에서 비롯됐다. 교편을 잡다 1978년 뉴욕으로 도미한 이 씨(당시 55세)는 당시 우울증 증세를 보이던 대학생 큰딸(당시 20세)의 기도 치유를 위해 수양관을 찾았다가 화재를 만났다.

불이 난 것을 안 이 씨는 즉시 옆방의 딸에게 달려갔지만 없어 이미 피신했다는 생각에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현장에 도착한 소방관과 경찰은 화재 진압 후 욕실에서 딸의 시신을 발견했다. 이후 그는 방화 혐의로 체포됐다.

화재전문가들은 누전 등 사고에 의한 가능성이 크다는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고 결국 "우울증을 앓던 딸과 관계가 좋지 않던 이 씨가 휘발유를 뿌려 불을 질렀고, 그의 셔츠와 바지에 묻은 발화성 물질이 그 증거"라는 검찰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서 종신형이 선고됐다.

이 씨는 이후 4차례나 항소와 재심을 요청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설상가상으로 이 씨의 아내도 투병생활을 하는 등 시련이 깊어졌다.

2012년 마침내 제3순회항소법원이 이 씨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골드버거 변호사는 뉴욕시소방국 화재수사관 출신인 존 렌티니 박사의 보고서를 증거로 제출했다.

"이 씨의 유죄판결을 이끌어낸 검찰보고서를 신뢰할 수 없다. 그의 옷에 묻은 발화물질이 모두 다르다"는 렌티니 박사의 주장에 대해 항소법원은 하급 법원에 '증거심리'를 명령했다.

검찰은 지난 5월 29일 증거심리에서 렌티니 박사의 주장을 반박하지 못했고, 오히려 렌티니 박사의 기법이 더 정확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최종 판결이 나왔지만 이 씨를 기소했던 크리스틴 먼로카운티 검사는 항소할 뜻을 보이면서 "시간이 너무 지나 재기소는 불가능에 가까울 것 같지만 얼마나 많은 증인이 아직 생존해 있는지, 그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또 얼마나 당시를 기억하는지를 신중히 재검토해서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뉴욕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