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수파 불구 진보정책 펼치고 재정위기 극복·유럽 최정상국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기독사회 연합이 24일(현지시간) 끝난 총선거에서 다시 승리를 거두면서 또 하나의 기록을 세웠다.

앙겔라 메르켈(가운데) 독일 총리가 24일(현지시간) 총선 승리 후 베를린의 기독민주당(CDU) 당사에서 당직자들에게 둘러싸여 축하를 받고 있다. 독일 연방선거관리위원회는 25일 전날 실시된 하원 선거에서 집권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이 33％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신화 연합뉴스

독일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 동독 출신의 첫 통일독일 총리, 전후 최연소 독일 총리에 이어 4선 연임의 길에 들어섰다. 자신의 정치적 스승으로 서독의 6대 총리에서 통일 이후까지 16년간 총리직을 수행한 헬무트 콜 전 총리와 같은 반열에 올랐다.

메르켈의 12년간 집권 기간 독일은 유럽 최대 경제대국으로 자리를 굳건히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를 무난히 넘겼다. 정치적으로도 유럽의 중심 국가로 탈바꿈했다.

독일 총리에서 글로벌 리더로 성장하게 된 것은 안정감과 냉철함을 갖춘 메르켈의 ‘조용한 카리스마’가 주목된다. 그의 최대 무기는 ‘침묵’이 꼽힌다. 그는 “침묵할 줄 아는 능력은 생존전략 중 하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냉철함도 남성 중심의 독일 정치판에서 일인자에 오르기까지 한 힘이다.

하지만 메르켈이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처럼 냉정한 여성 정치인은 아니다. 메르켈은 독일 국민에게 ‘무티’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엄마라는 의미다. 어머니 같은 포용력으로 통합과 실용을 중시한다. 보수 정당을 대표했지만, 대연정을 통해 진보정책도 상당히 받아들였다.

2011년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지자 탈핵 선언을 하는 정치적 결단을 내렸다. 2015년 가을에는 난민 문제를 마주했다. 메르켈은 예상을 깨고 난민을 수용했다. 올해에는 동성혼 결혼에 대해서도 연방의회에서 기민당의 자유투표를 결정했다. 자신은 개인적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 보수진영으로부터의 비판을 다소 누그러뜨렸지만, 자유투표 결정은 사실상 동성혼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로 받아들여졌다. 이 같은 정책들은 집권 다수가 보수세력인 상황에서 상상하기 어려웠던 결단이었다.

메르켈의 또 다른 무기는 소박함과 겸손함이다. 그는 지난 7월 말 남편과 이탈리아 북부 산악 휴양지 쥐트티롤 줄덴에서 휴가를 보냈다. 9년째 같은 장소다. 머문 호텔도 같다. 올해 휴가지에서 5년째 붉은색 체크 남방에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은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그는 평소 낮은 굽의 신발에 비슷한 스타일의 단정한 정장을 입는다. 정치 입문 후 동독에서 온 여성 정치인. 더구나 외모도 꾸미지 않고 핸드백도 들지 않는 그에게 조롱과 냉소가 쏟아졌었다. 정치 이력이 붙이면서 이전보다 다소 꾸미기도 했지만, 여전히 소박하다. 가식이 없고 겸손한 태도가 오히려 돋보였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도 돈독한 관계를 맺었던 메르켈은 국가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과는 각을 세우고 있다. ‘스트롱맨’과 체질적으로도 맞지 않는 그의 존재감은 국제 정치무대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김영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