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권력 서열 3위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중국의 강력 반발에도 2일(현지시간) 대만을 전격 방문했다. 중국은 “이번 일로 발생한 모든 후과는 반드시 미국과 대만 독립·분열세력이 책임져야 한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여 대만 해협을 둘러싸고 미중 관계가 격랑 속으로 빠져들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2일 밤 대만 타이베이 쑹산공항에 내린 뒤 조셉 우(왼쪽 두 번째) 대만 외교부 장관 등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대만 외교부 제공 EPA 연합뉴스

펠로시 의장을 포함해 미국 하원의원 대표단이 탑승한 C-40C 수송기가 이날 밤 10시44분 대만 타이베이 쑹산공항에 내렸다. 펠로시 의장은 도착 직후 성명을 내고 “미 의회 대표단의 대만 방문은 대만의 힘찬 민주주의를 지원하려는 미국의 확고한 약속에 따른 것”이라며 “전 세계가 독재와 민주주의 사이에서 선택을 마주한 상황에서 2300만 대만 국민에 대한 미국의 연대는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견제에도 대만을 방문한 건 ‘공산주의에 맞서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던진 셈이다.

펠로시 의장은 이날 대만 도착과 동시에 공개된 ‘내가 의회 대표단을 대만으로 이끄는 이유’ 제목의 워싱턴포스트(WP) 기고에서 이번 방문이 ‘하나의 중국’ 정책과 모순되지 않고, 미국은 중국의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를 반대하는 것이라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집권을 강화하면서 혹독한 인권 기록과 법치에 대한 무시가 지속되고 있다”며 직격했다.

미국 백악관은 “펠로시 의장의 이번 방문은 중국의 주권을 침해하지 않았다. 미국은 어떤 위협에도 겁먹지 않을 것”이라며 두둔했고, 미치 매코널 원내대표를 포함한 미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 26명도 성명을 내고 초당적 지지 의사를 밝혔다.

펠로시 의장은 1997년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 이후 25년 만에 대만을 찾은 미국 최고위급 인사다. 그런 점에서 그의 이번 방문은 미중 관계가 극한 대치하는 상황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돼왔다. 펠로시 의장은 3일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면담한 뒤 입법원(의회)과 인권박물관 방문, 중국 반체제 인사 면담 등 일정을 소화하고 오후 4, 5시께 출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 정부는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대만 총통실은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방문을 통해 대만-미국 파트너십을 심화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환영했다. 대만 외교부도 “펠로시 의장의 방문은 대만에 대한 미국의 바위처럼 단단한 지지를 보여주며 대만-미국 관계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도발로 규정하고 강경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중국 외교부는 성명에서 “반드시 모든 필요한 조치를 해 국가 주권과 영토의 완전함을 단호히 수호할 것”이라면서 “미국은 대만으로 중국을 제압하려고 시도하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끊임없이 왜곡하며 대만과의 공식 왕래를 강화해 대만 독립·분열 활동을 뒷받침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불장난으로, 불장난하는 사람은 반드시 불타 죽는다”고 반발했다.

펠로시 의장 일행을 태운 C-40C 수송기는 말레이시아에서 이륙, 남중국해를 경유해 대만으로 향하는 항로 대신 오른쪽으로 다소 우회했다. 중국의 군사 도발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