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최자 없어도 큰 인파 예상땐
- 위험 예방할 의무 국가에 있어”

- WP “삼풍 겪고도 배우지 못해”

이태원 참사와 관련, 미국 압사 문제 권위자는 과학적인 군중 관리·통제를 의무화하는 ‘압사방지법’ 도입만이 압사 사상자 수를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조언했다.

2016년 ‘압사에 대한 성문법적 해결책’ 논문을 쓴 트레이시 흐레스코 펄 오클라호마대 법대 교수는 “경험으로 봤을 때 법 도입 외 방법은 참사 방지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압사 사고를 부르는 결정적 요인은 군중의 밀도로, 1㎡당 5명을 넘어서면 압사 위험이 급증하고 7명에 이르면 거의 필연적으로 대형 사고로 이어진다. 사람 수가 최대 수용인원에 못 미쳐도 밀도가 임계점을 넘으면 사고로 이어지므로 압사는 오픈런 행사나 콘서트장 등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며 “문제가 될 특정장소를 국소적으로 정비하기보다 포괄적인 군중관리 계획이 필요하다. 자율에 맡겨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압사방지법을 통해 행사 전에는 주요 이동 경로 분석 및 병목현상 요인 제거, 구역별 밀도 예측, 시간별 차등 도착 등 조처하고, 행사 도중에는 실시간 모니터링, 주최자와 경찰·소방당국, 인파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 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펄 교수는 “주최자가 없는 행사라도 큰 인파가 특정 시각에 몰릴 것이 예상된다면 국가 등의 주체가 위험을 낮출 조처를 할 법적 의무가 있다”고 꼬집었다.

‘이태원 참사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사고’라는 외신의 평가도 이어진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4일(현지시간) “한국이 27년 전 502명이 숨진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를 겪고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게 아니냐”며 “이태원 참사는 사고 발생 전부터 위험이 예고됐는데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은 점이 삼풍 때와 비슷하다. 책임자들은 ‘어쩔 수 없었다’ 식의 ‘무책임성’을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삼풍 참사가 한국의 고도 경제성장에 경종을 울렸다면 이태원 참사는 한국이 문화 중심지로서 전 세계에 존재감을 떨치던 중 발생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영국 BBC방송은 이태원 참사 당일 목이 쉬도록 소리치며 군중통제에 나선 이태원파출소 소속 김백겸 경사를 인터뷰한 영상을 4일 올렸다. 김 경사는 “사고 현장에 계셨던 많은 시민이 제가 소리치는 방향으로 이동하셨다. 많은 이가 구조활동을 펼쳤다”면서도 “(참사를 막지 못해) 면목이 없고, 대한민국 경찰로서 의무를 다하지 못해 정말 죄송하다”고 끝내 울먹였다. BBC는 또 5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촛불집회 현장 소식을 전하며 “믿기지 않게 이런 일이 또 일어났다” “(대통령의) 진정한 애도는 사퇴”라고 목소리를 높인 시민을 인터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