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궁, 쇼트트랙, 바둑, 골프, 스타크래프트는 우리나라 선수들이 신기(神技)를 자랑하며 세계를 석권하는 스포츠 종목입니다.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 뒷골목을 누비던 비보이(B-boy)의 세계 제패, 아시아를 뒤흔드는 한류, 수백만 명이 거리로 뛰어나오는 응원 문화는 한국 문화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인구 4900만 명에 불과한 조그마한 나라, 대한민국에서 이런 폭발적 역동성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때론 '대충 대충 문화'로 치도곤을 당하고, 때론 '다이내믹 코리아'라며 찬사를 받는 한국인의 역동성. '한국인을 춤추게 하라'(사계절)의 저자인 최준식 이화여대 교수는 이런 에너지의 근간을 무교에서 찾습니다. 판소리, 살풀이춤 등 대표적 전통문화가 굿판에서 연원했다는 점에서 자유분방한 성정의 기원을 '신기(神氣)'에서 찾으면서 그 가능성을 활짝 펼치자고 주장합니다.

신기는 한국인의 일상 곳곳에서 확인됩니다. 정갈한 재료를 뻘겋고 매운 고추장에 마구 비벼 먹는 비빔밥, 폭탄주를 즐기며 신명을 다해 술을 마시는 문화, '빨리 빨리' 정신을 토대로 한 초고속 인터넷 기반 구축 등이 그렇습니다.

한국인들은 예술적 감흥을 높여 감정을 발산하는데 능합니다. 사물이나 사건을 대할 때 꼼꼼하고 세세한 분석을 하기보다는 화끈하게 신기를 발휘하면서 감정을 있는 대로 표현하며 살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거기에도 내적인 질서가 존재하겠죠.

요즘 수학자나 물리학자들이 주장하는 카오스 이론이나 프랙털 이론에 따르면 무질서하게 보이는 자연에도 보이지 않는 내적인 질서가 있다고 합니다. 프랙털 기하학의 관점에서 보면 언뜻 촌스럽고 무질서해 보이는 우리의 전통문화와 자연경관에 어떤 '복잡한 질서'가 내재해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정말로 자연스러운 것은 수준 높은 미가 될 수 있습니다. 아무 질서가 없다면 '개판'이 되고 거기서는 어떠한 미도 발견할 수 없겠죠.

최 교수는 비정형적인 즉흥성을 우리 미학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학자입니다. 한국문화의 원형을 '신명'에서 찾는 조동일 교수와 '흥한민국'과 '프랙털'을 쓴 심광현 교수는 물론 신바람과 W이론을 창출한 이면우 서울대 공대 교수와도 일맥상통합니다.

일전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습니다. 최 교수는 한국인을 춤추게 하는 것은 '신기'라고 합니다. "춤추게 하려면 그들에게 그들 자신의 멜로디를 연주해 줘야 한다"는 실존주의 철학자 롬바흐의 말처럼 한국인에게 내장된 멜로디는 '신기'며 이 역동성을 통해 가장 대한민국다운 모습이 나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한국의 B-boy가 세계 무대를 휩쓸 듯 역동적 '신기'를 되살려 춤을 추듯 신명나게 살아야겠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강렬한 기를 갖고 있는 한국인들이 혼란한 세태에 가려 잠재된 능력을 마음껏 터뜨리지 못하고 있어요. 우리의 정체성을 제대로 알고 동기 부여를 해주는 일이 필요합니다." 최 교수의 말입니다.

유창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