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의 한 장면 또 하나가 생생하게 살아 돌아왔다. 국제관계 대기자 출신 저술가인 구종서(사진) 씨가 항몽전쟁 그 상세한 기록(살림·전3권·각권1만5000원)을 펴냈다. 각권은 모두 500여 쪽이 넘는 두꺼운 분량이다. '그 상세한 기록'이라는 제목에 값한다.

저자는 이 시점에 왜 고려의 40년 항몽전쟁의 '상세한 기록'에 무서울 정도로 집중한 것일까. 그보다 먼저, 13세기의 40여 년 동안 6차례나 세계 최강국 몽골의 침략을 받고도 끝내 국가를 보전한 고려의 경험에서 21세기 한국은 어떤 메시지를 얻을 수 있을까.

"우리는 역사적으로 외침을 많이 받은 약자였다. 강대국의 침략으로 위기에 봉착했을 때마다 우리 내부에서는 명분론(주전론)과 실리론(주화론)이 대립했다. '강한 나라의 침략에 맞서 어떻게 살아남느냐' 하는 절대적인 질문 앞에서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결과를 놓고 보면 결국 실리론이 살아남았다. 항몽전쟁도 그러했다. 이것은 우리 역사에서 하나의 진리가 되었다."

그러나 저자가 앞뒤 없이 실리론만을 내세우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이 이 책의 중요한 메시지로 보인다. "국가라는 공동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실리론과 명분론 모두 필요하다. 그러나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제정세를 제대로 읽느냐 읽지 못하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 역사 속의 명분론은 대개 국제정세를 전혀 모르고 당위를 주장하기만 했다. 국가는 망할 위기로 내몰리고 국민은 죽어갔다."

'항몽전쟁 그 상세한 기록'의 가장 큰 미덕은 지금까지 명분론과 실리론을 적대적 대립관계로만 파악하고 둘 중 하나의 손을 들어주는 데 그쳤던 기존의 역사해석에 딸려가지 않고, 양쪽을 모두 '선택가능한 대안'으로 끌어안되 주권자가 그 복잡다단한 상황에서 제대로 선택해야함을 강조한다는 데 있다.

"몽골의 침략을 맞아 일방적인 명분론을 내세웠던 금나라, 남송, 코라슴(이란), 서요 등의 나라는 국가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결과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고려는 항쟁과 협상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결국 국가를 지켰다. 국제정세를 정확하게 읽는 개방적 민족주의, 국제주의적 민족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저자는 "2001년 초고는 썼지만 국내외 많은 장소를 답사하면서 다듬느라 출간까지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그는 "삼별초의 항쟁이 독재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최우의 권력욕에서 비롯됐다는 역사해석은 틀렸다. 당시 최우는 몽골에 투항하기만 하면 높은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런 그가 항쟁의 길을 택한 것은 그의 전략적 판단이었고 자주정신과 관계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