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립극단의 제46회 정기공연 작품 '어무이 게사니' 공연 장면. 부산시립극단 제공

# 대형상업뮤지컬에 대항

- 시립극단 음악·무용 접목
- 문석봉 감독 의욕적 작업
- "모처럼 볼거리 풍부한 공연"

# 열악한 제작환경에 한계

- 제작비 6500만원·배우 부족
- 문화회관 음향 시설도 미흡
- "연출자 의욕 결국 욕심 그쳐"

장엄한 북소리와 함께 선혈이 낭자한 흰 깃발이 휘날렸다. 깃발은 권력자가 벌인 전쟁에서 상처를 입은 민중의 고통을 상징한다. 지난 18일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에서 열린 부산시립극단의 제46회 정기공연 '어무이 게사니'는 그 장면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공연 시간은 2시간.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뮤지컬 '레미제라블'이 떠올랐다. '레미제라블'에서는 혁명군의 적기가 무대 위에서 펄럭거렸다. 시립극단 문석봉 예술감독이 이를 의식했든, 의식하지 않았던 '어무이 게사니'는 묘하게 레미제라블을 연상케 했고 두 작품을 비교하게 하였다.

'레미제라블'은 한마디로 블록버스터다. 제작비 200억 원과 오디션으로 선발한 최고 배우들 그리고 최고의 무대. 그에 맞선 '어무이 게사니'는 제작비 6500만 원으로 완성했고 배우가 모자라 대학생들까지 출연시켰다. '어무이 게사니'는 '레미제라블'과는 비교가 어려울 만큼 열악한 제작 환경에서 만들어졌다. 그만큼 작품의 완성도와 세련미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문 감독은 "시립극단만이 할 수 있는 작품으로 대형 상업 뮤지컬에 대항하기 위해 '어무이 게사니'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작품 선택은 적절했다. 권력자의 위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결국 민중이 역사의 주인이라는 메시지가 선명했다.

형식은 세련되지 못했다. 문 감독은 음악과 무용까지 넣어 시립극단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무대에 올렸지만, 오히려 관객이 몰입하는 데 방해가 됐다. 문화회관의 음향 시설은 음악극을 하기에 적당하지 않았고 일부 배우의 연기는 서툴렀다. 테너의 독창은 연극과 어울리지 않았다. 국내 뮤지컬 분야에서 명성이 자자했던 문 감독이 첫 작품에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기 위해 쏟았던 '의욕'은 아직은 '욕심'인가 보다.

18일 공연에는 제자인 문 감독을 격려하기 위해 서울에서 원로 연극인 김의경, 김도훈 씨가 찾았다. 부산연극협회 주도로 지역 연극인들도 대거 관람했다. 연극인들은 조심스럽게 문 감독의 첫 작품을 평가했다.

전승환 전위무대 대표는 "시립극단이 모처럼 볼거리가 풍부한 공연을 올렸다. 작품 곳곳에서 문 감독의 손길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냉정한 평가도 잇따랐다. 음악극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이성규 부두연극단 대표는 "연기력은 많이 좋아졌다. 그러나 음악극인데 음악이 대체로 완성도가 떨어졌고 음향시설도 미흡했다"고 평가했다. 한 연극인은 "왜 음악극을 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연출자가 이것저것 시도했는데 결국 욕심에 그쳤다. 제대로 고증이 안 된 의상도 눈에 거슬렸고 음악도 전자기타 음이 강한 록에다 북소리까지 넣어 혼란스러웠다"고 밝혔다. 규모를 늘리기 위해 대학생들을 출연시킨 것이 전체적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뜨렸다는 지적은 열악한 부산연극의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평가여서 뒷맛이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