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부산시립극단 역사음악극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인 '격정천리'가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에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지난해 시립극단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문석봉 감독은 올해 '어메, 게사니'(조선 시대 임진왜란), '언챙이 곡마단'(삼국 시대 황산벌 전투)에 이어 6·25전쟁을 소재로 한 '격정천리'를 마지막 작품으로 선택했다.

이들 작품 소재는 모두 역사적인 사건에서 가져왔고 형식은 음악극을 취했다. 공연 무대는 중극장('어메, 게사니')과 소극장('언챙이 곡마단')을 거쳐 다시 중극장 무대로 옮겨 '격정천리'를 선보이고 있다.

'격정천리'는 세 작품 중 가장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다. 문 감독은 예전부터 공간 활용에 뛰어난 연출가로 유명했다. '어메, 게사니'에서 극장 규모에 비해 무대가 큰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을 적절하게 이용하는 연출을 선보여 인정받았다. 이어 부산문화회관 소극장에서 시도한 마당극('언챙이 곡마단')은 의욕이 너무 앞섰다는 평가를 들었다. 중극장으로 다시 무대를 옮긴 '격정천리'는 무대 활용과 배치가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다는 점을 보여줬다. 특히 나이트클럽 장면은 많지 않은 예산으로 관객의 머릿속에 확실하게 각인시킬 수 있는 무대를 만들었다는 평을 받았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음악극에 점점 녹아가는 분위기였다. 이혁우와 이현주의 안정된 연기에다 황창기가 카리스마를 불어넣으면서 무대가 내뿜는 힘이 훨씬 강렬해졌다. 여기에 젊은 배우들의 능청스런 연기도 일정 수준을 담보하는 등 '물이 올랐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혁우, 이현주, 황창기 등의 노래 실력이다. 이제는 음악극에서 독창을 능숙하게 소화할 정도로 수준을 끌어올렸다.

시립극단의 역사음악극 시리즈는 아쉬움도 남겼다. 가장 큰 부분은 '역사'다. 세 개의 작품이 모두 역사적 사건을 현재로 호출했다. 하지만 현재와 소통하는 데는 문제점을 남겼다. 역사를 불러왔다면 오늘날의 의미로 되살려내야 하지만, 세 작품 모두 반향은 없는 편이었다. 6·25전쟁이 개인과 가족 해체에 미친 영향을 보여주려 했던 '격정천리'는 오히려 신파의 이미지만 부각하는 데 주력한 느낌이다. 굳이 역사를 재해석한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이제는 시립극단의 정체성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문 감독은 현재 공연예술의 대세인 대형 뮤지컬에 맞서 적은 예산으로 얼마든지 좋은 공연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음악극에 도전했다. 결과는 어느 정도 성공을 일궜다. 시립극단은 독자적으로 대형 뮤지컬에 버금가는 음악극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하지만 시립극단은 뮤지컬이나 음악극을 전문으로 하는 극단이 아니다. 음악극이 시립극단 레퍼토리 중 하나가 되는 것을 넘어 레퍼토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많은 관객은 부산을 대표하는 시립극단 배우들이 무선 마이크 없이 목에 핏대를 세워가면서 생목으로 무대와 객석을 휘어잡는 연기로 연극의 짜릿한 감동을 주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