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쓰려 노숙 생활 조지 오웰
- 노숙자 비하 동료 보면서
- 자신의 처지는 망각한채
- 중산층 열망 환상에 씁쓸

- 원전과 가까이 있는 부산이
- 전력 필요 당위성 주장하는
- 수도권 논리에 따른다면
- 이 또한 공간 도착(倒錯)

'경계의 인문학'에서 경계란 무엇일까? 먼저 경계는 생각과 앎의 자리이고, 말의 자리이며, 삶의 자리다. 서로 돌고 도는 까닭에 순서가 바뀌어도 상관없다. 어떤 사물 현상도 그 안에 들어가면 제대로 보고 생각할 수 없다.

인문학의 가장 기본 덕목인 '자기 성찰'은 떼어 놓고 보는 작업이다. 비록 내가 그 안에 있더라도 그 세계를 떼놓고 대상으로 사유하는 객관화(objectification)는 성찰을 위한 전제이다. 안과 밖을 동시에 보는 안과 밖 사이, 경계가 바로 객관화하는 생각의 자리다.

문학적으로는 패러디의 공간이기도 한 이곳은 국가, 민족, 이데올로기들, 심지어 나 자신이 '그 너머'로 가는 상상의 고개다. "상상력은 우리를 이 세상 끝까지 가보게 만드는 힘"(안도현)이란 말도 비슷한 맥락 같다.

■경계 너머, '오래된 미래'의 앎·말·삶

미국 언어학자 다니엘 에버렛(Daniel Everett)은 1978년 아마존 유역의 피다한 사람들에게 '방탕한 삶이 아닌 목적이 있는 삶을, 죽음이 아닌 생명을, 지옥이 아닌 천국을 선택할 기회'를 선물할 선교사로서 파견됐다. 그런데 애초부터 '자신들이 부족하다는 느낌, 타락했다는 느낌, 구원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는 그들에게 죄의식을 심어 '바른길'로 이끌기는 불가능했을 터. 그들의 문화, 즉 앎과 말과 삶에는 죄의식이나 두려움에서 도피할 목적으로 현재를 대리하거나 위탁할 초월적 가치 자체가 없는 까닭이다.

에버렛에겐 성경을 피다한 말로 번역하는 일도 맡겨졌다. 그는 어휘와 구문을 연구하면서 피다한의 진술문이 지금 말하는 순간과 대화 당사자의 경험과 직접 연관되는 주장만 담기 때문에, 간접 경험을 전달할 중문과 복문을 만들 수 없다. 말하는 순간에 닻을 내리므로 완료시제가 없고, 전달자 생각이 개입되고 조작되는 과거나 장밋빛 미래를 담는 구조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 이외의 계획이 없어, 미래시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이는 저장도, 축적도, 사유재산도, 계급도, 성차별도, 당위와 의무와 명령도 없는 피다한 문화와 일치한다. 이런 경험과 연구를 정리한 책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2008)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한다.

"피다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데 유용한 것을 핵심에 두고 문화를 이룩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또한, 다른 사람의 지식이나 해법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을 열망하지도 않는다. 일상에서 살아 숨 쉬는 피다한 사람들의 가치관은 나의 삶과 믿음을 돌아보게 했다. 내가 간직해오던 많은 것들이 대부분 근거 없는 망상이었다. 비로소 신이 없는 유쾌한 세상에 눈뜨게 된 것이다."

바로 이곳이 경계 너머, '이 세상 끝'이다. 마지막 문장의 '신'은 현대인을 언제나 안달하게 하는 진리, 이상, 미래, 유토피아 등으로 바꿔 이해할 수 있다.

■앎·말·삶의 자리, 시공간 도착(倒錯)

	조지 오웰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전업 작가로 나선 후, 한동안 노숙자로 생활했다. 당시 그는 다른 노숙자처럼 낮엔 구걸하고 저녁 식사와 잠자리는 구빈원에서 해결했다. 그곳 감독의 눈에 띄어 식당 일을 하던 오웰은 그곳 음식쓰레기가 실제 노숙자들 음식보다 더 좋다는 사실을 알고 비판하자, 어느 동료 노숙자로부터 훈계를 들었다.

"여기 노숙자들은 너무 게을러 일을 안 하려 하지. 그래서 다들 저 꼴이야. 그런 사람들 격려해줄 이유가 없어. 다 쓰레기니까."

엄한 설교는 계속됐다.

"이런 곳을 너무 좋게 만들어놓으면 온 나라 쓰레기들이 다 몰려들게 돼. 그런 쓰레기들을 떼놓으려면 음식이라도 나빠야 해."

'그가 동료 노숙자들과 자신을 용케도 분리하는 게 흥미로웠던' 그 훈계를 '자기는 노숙자가 아니라는 암시'라며 오웰이 주목한 점은, 비록 몸은 구빈원에 있지만, 생각이 거주하는 곳은 영국 사회가 이상화해온 중산층이라는 형상, 현재 자기 삶의 자리를 탈출하는 행복의 '환상' 혹은 '환각'이었다. 실제 경계로 밀려나 살지만, 오히려 영국 사회 중심에 자기를 갖다 놓는 일종의 '공간 도착'(spatial perversion)이다.

이런 순응의 조건에서 국가는 일사불란하게 돌아가고 빨리 발전하는 것 같지만, 유력하고 통일된 목소리를 단순 복제하는 기계 장치의 앎과 말과 삶으로 변하고, 그 국가의 토대인 우리는 통치에 효율적인 거대 시스템의 부속품 혹은 분리된 개인으로 강등된다. 똑같진 않더라도 많은 현대인이 자기 삶의 시공간으로부터 도피해 다른 시공간에 사는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핵발전소 문제를 두고 부산 사람이 전력을 가장 많이 쓰는 중심(서울·경기)의 논리를 반복한다면, 이 또한 '공간 도착'인 셈이다.

■과거·미래에 짓눌린 경계, 지금, 여기

호스피스 운동을 이끈 죽음 연구자이며 소설가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삶의 끝, 죽음 앞에서 진정한 희망을 건지는 '인생수업'(2000)을 권한다.

로스는 "우리의 문화는 두려움을 판매한다"고 단언한다. 그녀는 그 두려움은 항상 과거에 일어난 어떤 일에 근거하며, 미래에 일어나리라 예측하는 어떤 일을 걱정하게 한다고 해부한다. 그래서 우리는 상황을 실제 모습 그대로 보지 않고, 우리가 바라는 상황의 모습에 우리 열망을 반복 투영함으로써, 지금 상황과 이곳의 '진실'을 부정하며 '환상'의 포로가 된다.

로스는 두려움을 회피하거나 자신이 두려워한다는 사실조차 모를 때, 그 두려움을 제대로 처리할 수 없으며, 이는 '분노'와 '화'로 변화 발전한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우리는 그 두려움을 직접 마주 보지 않고, 두려움이 자기가 사는 '지금, 여기'가 아니라 과거나 미래에 뿌리를 둔다는 진실에 눈감고 환각에 중독된다. '시간 도착'(temporal perversion)이다.

한번 돌아보자. 정치인들 공약과 정책, 교육 현장, 제약·의료계, 보험·금융, 갖가지 상품 광고, 심지어 밥상머리에서도 우리는 과거나 미래의 '성공·실패'를 상기시켜 "~해야 한다, 아니면(have to ~, or ~)" 하는 식으로 '유혹·위협'하는 언어 구성과 그로 인한 두려움과 공포를 주고받는다. 바로 '자기 계발'과 '치유'의 유행이 번성하는 텃밭이다. 지금 없는 그(것)의 지배와 명령을 거부하고, 내 옆 혹은 앞에 있는 '너'와 대화하며 우리를 옥죄어온 그 두려움에 직면하여 함께 해결해 나갈 때, '유쾌한 세상'은 지금 여기서 열릴 수 있다.


# 경계의 인문학 돌아보기

'경계의 인문학'은 인문학자로서 필자 스스로를 성찰하기 위한 용어였다. 연재된 글 안에서 전개됐던 근대 혹은 근대성 비판은 필자의 생각에 각인된 근대 학문의 다양하고 폭력적인 면모들을, 연구(자) 자체를 돌이켜 봄과 다르지 않다.

'지금, 여기'에는 '너'와 '나'만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위인' '그 진리의 책' '그 아름다운 나라' '그 숭고한 역사' 따위를 근거로 개입시켜 대화한다. 이는 소통이 아니라 기계적 전달이다. '너'와 '나'는 침묵하고 사라진다. 불완전하고 무능한 '너'와 '나'의 협력과 연대 속에 앎과 말과 삶을 생성시키는 소통의 문을 여는 '지금, 여기'가 바로 경계의 인문학이 탐색하는 자리이며, 바로 다양한 인간 무늬(人紋)가 생성될 수 있는 로컬리티의 참모습이다.

배윤기·부산참여연대 부설 리더십교육센터 소장 -끝-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격주로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