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기력한 세상을 살면서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하고 산다. 주어진 업무부터 사람의 도리까지 해야 하는 일들은 좀체 줄어들지 않는다. 어김없이 반복되는 빠듯한 일상에 충실했을 뿐인데 몸은 지치고 생각은 마비되고 감정은 무뎌진다.

서서히 일상이 휘어지면서 공허함이 찾아온다. 결핍이 고개를 내밀고 있음을 발견한다.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채워야 하는 것이다. 방전되어 버린 일상을 충전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귓가에 스치는 바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구름을 향해 과자 먹듯 입을 벌리고, 햇볕 같은 시선으로 상처를 바라보고, 오색 잎을 자랑하는 나무와 명랑한 대화를 하고, 주렁주렁 매달린 모과와 향긋한 입맞춤을 나누는 것이라고 가을 소풍을 다녀온 엄마가 말한다. 그 말들이 머릿속에서 훌라후프를 하듯 내내 빙빙 돌아간다. 딱딱한 일상에서 굳어가는 심장이 말랑말랑해진다. 자연과 사물 그리고 대상을 두고 요리조리 마음껏 꿈꿀 수 있는 원동력 그것은 바로 상상이다. 우리가 치열하게 살면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상상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삶의 일상성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상상은 생각을 통해 새로운 무언가를 그려내는 일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금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 불가결한 생각, 그 '생각이 주는 즐거움'을 알게 하는 책이 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이다. 제목만으로,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는 상상력의 비결을 알려줄 것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저자 미셸 투르니에는 116가지의 닮음과 다름에 관해 말한다. 기존의 어떠한 체계도 따르지 않고 삶의 요소들을 몇 개의 범주 안에 넣어 구체적인 사물을 통해 사유한다.

남자와 여자, 사랑과 우정, 웃음과 눈물, 건강과 병, 사냥과 낚시, 목욕과 샤워, 동물과 식물 등 대립하는 혹은 유사한 성격의 사물을 놓고 현대사회의 면모를 조명하고 재해석한다.

예로 나무와 길을 두고 "나무는 수직적이고, 길은 수평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무는 한군데에 붙박여 있는 안정성의 상징이다. 반면 길은 순환의 도구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언덕, 숲, 집뿐만 아니라 강이나 철길 따위의 풍경을 바라보면, 우리는 풍경이 이루고 있는 조화라는 것이 한군데 머물러 있는 덩어리들과 소통의 역할을 하는 길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사물에 대한 사유를 보다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차이점을 잘 파악하기 위해서는 머리를 차게 식히고 천천히 생각해야 한다. 유사성을 잘 식별하기 위해서는 머리를 뜨겁게 달구어서 재빠르게 생각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그가 사물을 사유하는 방식과 해석은 전적으로 공감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기존 생각에서 벗어나 '즐거운 일탈'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자극제가 될 것이다. 절대적 체계와 사유의 방식에 상관없이 삶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의미의 시작이지 않을까.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