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이란 우리 스스로 주체가 되어 엮어 놓은 자기중심적 관계망에 지나지 않는다.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인간관계의 망(network) 속에서 이성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한 특별한 인간관계는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만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서로 연애하는 관계에 있는 두 사람, 또는 몹시 그리며 사랑하는 사람을 뜻하는 '연인'들은 '내 인생의 반은 그대에게 있어요. 그 나머지도 나의 것은 아니죠'라는 어느 철 지난 유행가 가사처럼 서로에게 자신의 소중한 삶을 통째로 미련 없이 던져 버린다. 그러나 그 대가는 항상 혹독하다. 오귀스트 로댕을 사랑한 까미유 끌로델이 그랬고, 디에고 리베라를 사랑했던 프리다 칼로가 그랬다.

화가이자 미술에세이 작가인 저자 정은미는 열정적으로 예술혼을 불태운 화가들과 그들의 이성과 감성의 지배자로서 그들 삶에 깊숙이 개입하여 영감을 준 연인들에 주목했다. 오노 요코와 존 레넌,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와 잔 에뷔테른은 시대적 간격을 두고 둘이 하나인 완벽한 사랑을 이루었다.

연인 알마 말러의 치명적인 매력에 빠져 결코 헤어나지 못한 오스카 코코슈카, 그의 아내 까미유 모네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의 결정체였던 클로드 모네, 갈라 달리의 세속적 욕망을 사랑이란 이름으로 착각한 살바도르 달리, 앤디 워홀과의 금지된 만남이 부른 비극적 희생양 장 미셀 바스키아 등은 사랑하는 연인으로 인한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던가. 하물며 사랑하는 연인으로 만난 인연은 그 소중함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 소중한 인연도 '회자정리'(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 있다는 뜻)의 명제 앞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그 모습이 어떻든지 간에 그들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이별의 아픔을 겪게 된다. 사랑이 깊을수록 이별의 고통과 상처는 더욱 처절하다. 우리 모두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은 매우 각별하지만 예술가들에게 사랑의 감정은 창작의 불씨가 된다. 그들 창작의 결과물들은 우리에게 사랑의 감정을 환기시키며 치열했던 삶의 순간을 캔버스와 조각, 그리고 사진을 통해 목도하게 한다. 마치 우리가 지나왔던 인생에서 고이 간직하고 있는 사랑의 흔적을 들여다보듯….

'사랑은 때로 비수가 된다. 사랑의 자유 외에는 의지할 것 없는 사람들은 베일 줄 알면서도 또 다시 사랑에 모든 것을 건다. 그리고 결국 갈 곳을 찾지 못해 다리 위를 서성이곤 한다(119쪽)'.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와의 사랑이 파국을 맞은 후 마리 로랑생은 이렇게 말했다. "나를 열광시키는 것은 오직 그림뿐(109쪽)".

일생을 통해 만나는 모든 인연은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만나는 상대에 의해 투영된 숭고한 '나 자신을 문득 깨닫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게 된다. 우리가 진정으로 만날 수 있는 인연은 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뜻밖의 만남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갤러리 이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