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님들께 고마운 게 참 많지만, 그중에서도 달에게 '달'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신 게 정말 고맙다.

그 덕분에 후손인 우리는 달을 가리키는 지극히 아름다운 민족어를 수수만년 간직하게 됐다. 달은 부드러운 듯 굳건한 소리인 디귿(ㄷ)으로 시작해 포근한 리을(ㄹ)로 끝나는 데 둘 사이를 밝은 느낌의 모음 아(ㅏ)가 이어준다.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그러니까 보름달…하고 읊조리다 보면 왠지 마음이 편해지고 착해진다. 달을 뜻하는 세상의 많은 말 가운데 '달'은 어여쁘고 어여쁜 말이다.

달은 우리를 이어준다. 어디에 살든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든 살아있는 우리는 모두 같은 달을 보고 있으므로 달 덕분에 교감할 수 있다. 멀리 떨어진 연인이 "거기서도 저 달이 보이시나요"라고 서로 편지를 쓰는 장면은 예술 작품 속에서 흔하다.

그리고 달은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갓 태어난 지구를, 지구의 바닷속에서만 살던 생명체가 최초로 뭍에 오르던 그 날 밤을, 공룡이 땅 위를 거닐며 사랑을 나누던 때를,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 대륙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에 발을 내딛던 순간을.

적벽대전의 불빛이 장강을 붉게 물들였다는 그 밤이나 고구려의 전사들이 수나라 군대를 죽음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던 순간, 이순신의 함대가 부산포해전에서 적선을 종일 깨뜨린 뒤 밤이 되어서야 닻을 내려 쉬던 모습도…. 물론 이렇게 화려장대한 것만이 아니다. 갑돌이와 갑순이의 수줍은 밤 데이트나 당신의 첫 키스 장면 때도 달은 밤하늘에 있었다.

다른 달이 아닌 바로 저 달이 이 모든 장면을 보았다는 사실은 인류에게는 마르지 않는 상상력의 원천이다. 어떤 면에서는 기적 같은 일이다. 그 오랜 세월 저 모든 걸 목격한 존재가 지금도 날마다 새로 떠오르면서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도 해보게 된다. 일본어에서 해는 '히', 달은 '쯔키'라고 한다. 동쪽은 '히가시'이다. 일본어 '히'가 한국말의 '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는 시각이 꽤 있다. 실제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달'과 '쯔키'는 연관성을 느끼기 힘들다. 이건 왜 그럴까. 달은 여러 면에서 상상이 꼬리를 물게 한다.

우리 선조는 한 해를 시작하면서 달이 처음으로 만월이 되는 정월대보름(올해는 오는 5일)을 매우 소중히 생각했다.

민속학자 정상박 동아대 명예교수는 최근 펴낸 책 '우리민속 되짚어보기'에서 "기장군 철마면 연구리를 조사한 사례를 보면 정월대보름의 세시풍속이 전체 세시풍속의 1/4 정도가 되고 설날의 4배가 된다"고 밝혔다.

특히, 정월대보름 때 남쪽은 위쪽 지역보다 따뜻해 오광대 들놀음 별신굿탈놀이 같은 남도의 탈놀음은 주로 정월대보름에 놀고, 산대놀이 해서탈춤 같은 중부 이북의 탈놀음은 따뜻해진 단옷날에 논다며 정월대보름은 남도의 명절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이런 여건을 잘 살려 정월대보름을 부산의 축제일로 삼아 더 잘 치르자고 그는 제안한다.

어쨌든 올해 정월대보름에도 달님이 사람들 소원을 잘 들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