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중국 상하이에 갔던 건 순전히 자료를 찾기 위해서였다. 본지 문화부가 기획한 새 연재물 '고전학자 정천구의 한비자, 21세기 제국을 말하다'(지난 13일부터 매주 금요일 게재)를 시작하는 과정에서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관한 여러 자료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터였다.

상하이에서 가장 큰 서점인 상하이수청(上海書城)과 바로 그 곁의 상하이 최대 고서점을 들쑤시고 다니는 일은 힘들지만 신 나는 일이었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다양한 자료를 많이도 축적해 놓은 중국 대형 서점의 위용에 연신 놀라는 가운데 마음에 드는 자료를 결국에 '득템'하고 나자, 그때서야 윤봉길(1908~1932)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상하이에 윤봉길 의사를 모신 곳이 있다는 것도 잘 몰랐다. 이번 방문 계획을 짜면서 여행책에서 봤다. 나의 무심함이 머쓱하고 부끄러웠다. 상하이의 지하철 3호선과 8호선이 지나는 훙커우축구장역 근처에 루쉰공원이 있다. 중국 인민이 사랑하는 대문호 루쉰(1881~1936)을 기념하는 공원이다. 세계 대문호 조각상이 즐비하고, 가장 돋보이는 자리에 루쉰 동상이 있다. 루쉰 기념관, 루쉰 묘지 그리고 어린 세대를 위한 놀이공원이 함께 있다.

이 공원의 옛 이름이 바로 훙커우(홍구)공원. 윤봉길 의사가 백범 김구와 함께 준비하여 1932년 4월 29일 이 공원에서 거사를 단행했다. 상하이를 침략한 일본군이 일본 천황의 생일(천장절)을 맞아 이 공원에서 성대한 행사를 열자 윤 의사는 폭탄을 던졌다.

'백범일지'에서 백범은 거사 당일 아침 윤 의사와 가진 마지막 만남을 이렇게 기록했다. '때마침 7시를 치는 종소리가 들렸다. 윤 군은 자기 시계를 꺼내 내 시계와 교환하자고 하였다. "제 시계는 어제 선서식 후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6원을 주고 구입한 것인데, 선생님 시계는 불과 2원짜리입니다. 저는 이제 1시간밖에 더 소용없습니다." 나는 기념품으로서 그의 시계를 받고, 내 시계를 그에게 주었다.' 청년 윤봉길의 담대한 성품이 드러난다.

루쉰공원 한가운데에는 공원 역사를 기록한 큰 조형물이 있다. 조형물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첫머리에 윤봉길 의사 사진을 새겨놓았다. 이 공원의 전체 역사에서 차지하는 윤 의사의 비중이 그만큼 커 보였다. 루쉰공원 안쪽에 '매원'이 있다. 매원은 윤봉길 의사를 모신 곳이다. 루쉰공원은 무료입장인데 매원은 입장료 15위안을 받는다. 안에 한국 전통 건물에 '윤봉길 의사 생애사적 전시관'이 있다. 이곳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은 매점에서 '윤봉길'이라는 이름을 떠올리며 20위안짜리 기념볼펜을 샀다. 중국인들은 "까오리, 까오리(한국, 한국)"하며 한국 청년의 사연을 들여다 보았다.

매원에는 수십 그루 매화나무가 꽃을 활짝 피웠다. 윤 의사의 호가 매헌이다. 매원에 핀 매화를 보면서 우리에게 오늘 같은 자유와 풍요를 선사한 분들에 관한 우리의 관심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윤 의사가 산화했을 때 스물 네 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