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가 아닌 사회학자가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낯설었다. 더군다나 기쁨, 슬픔, 외로움, 놀라움, 두려움 등과 같이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닌 '모멸감'을. 거기에다 음악까지 접목을 시키다니 '이게 뭐지?' 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우리 사회에 만연한 모멸의 흔적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는 저자의 통찰력과, 모멸감을 읽고 그 느낌으로 만든 작곡가의 음악을 함께 들을 수 있었던 것이 무척 흥미로웠다.

모멸감에서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이란 부제가 암시하듯 저자는 감정을 개인적인 것만이 아닌 사회적으로 구성된 시스템으로 본다. 그래서 감정을 사회적인 지평에서 분석하고 역사적인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모멸은 모욕하고 경멸하는 것, 즉 마음으로 낮추어 보거나 하찮게 여기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을 의도적으로 또는 무심코 격하시키고 그 존엄성을 부정하는 것, 상대방을 비하하고 깔아뭉갬으로써 수치심을 유발하는 행위다. 그러한 대접을 받는 사람이 느끼게 되는 감정이 모멸감이다'(161쪽).

저자는 한국사회에서 모멸감이 만연하게 된 것은 조선시대에 형성된 귀천의식과 신분적 우열관념이 자각적으로 청산되지 못한 상태에서 급격하게 추진된 산업화와 급변한 사회환경으로 인한 공동체 붕괴를 역사적 배경으로 보고 있다. 그와 맞물려 '돈'으로 매겨지는 자본주의 사회가 한 축을 이루면서 신분제도는 사라졌으나 신분 관념은 여전히 살아 있다고 분석한다. 학력, 빈부, 외모, 지위 등으로 차별하는 것이 오히려 보편화하였다고 본다. 감정노동을 혹독하게 만드는 의식구조도 귀족적 차별의식과 맞물려 있다.

최근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라면상무 사건' '땅콩회항 사건' '백화점 모녀 사건'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모멸감을 유발하는 상황과 변수는 다양하다. 저자는 이를 비하, 차별, 조롱, 무시, 침해, 동정, 오해의 일곱 가지 범주로 나눈다. 소설, 영화, TV 보도, 저자의 경험 등을 실례로 들어 일곱 가지 감정이 불러일으키는 모멸감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모멸감을 뛰어넘어 인간으로서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삶은 어떻게 가능할까? 저자는 구조적 차원에서 일자리 창출과 문화적 차원에서 특정한 기준으로 인간의 귀천을 나누는 사회풍토 개선, 개인적 차원에서 품위를 잃지 않도록 개인의 내면적인 힘을 키우는 것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한 명의 인간으로 존중받으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낙담하기에는 이르다. 저자가 제안하는 '모욕 감수성'을 키우는 데서 시작하면 될 것 같다.

'내가 무심코 반복하는 언행이 사회를 형성하는 과정 일부라는 것, 타인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관행에 자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알아차리는 감수성이 요구된다(222쪽).

부산시민도서관 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