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기억보다 망각에 익숙하다. 끊임없이 기억해 내기 위함보다 망각하기 위해 사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살아온 시간이라고 해봐야 서른 남짓이지만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지난 4월 16일은 대형 재난으로부터 1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차분하지만은 않은 추모 분위기 속에서 나는 한 권의 사진집을 꺼내보았다. 장면채집자 노순택의 사진 에세이 '사진의 털'.

'사진이란 한낱 종이에 불과하지만, 오늘날 사이버 세상을 유영하는 대개의 사진은 솜털의 무게마저 없는 것이라지만, 어떤 사진은 짓누른다.' (274쪽)

사진가 노순택은 글과 사진을 통해 대한민국의 풍경을 조망한다. 그는 사진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떤 지경인지 왜 이 지경인지 사고를 촉구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썼다.

이 대한민국에 어떤 풍경이 존재하고 부재하는지, '그때 그곳'과 '지금 그곳'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 사진을 통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이 질문은 망각했던 지난 시대를 열어젖히고 심장에 와서 터진다.

'대통령은 눈물을 훔쳤다. 울먹이며 이름을 불렀다. 무한한 책임을 느끼며, 한 점 의혹 없이, 낱낱이, 얼마의 시간과 비용을 들든, 밝혀내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결연했다.'(103쪽)

우리가 필요 이상의 속도로 빠르게 잊은 가까운 과거는 사진을 통해 기록되고 기억된다. 군 장병들을 실은 배가 가라앉았을 때 '그때의 대통령'은 말했다. 아이들을 실은 배가 가라앉았을 때 '지금의 대통령'도 말했다. 무엇이 과거이고 무엇이 현재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닮아 있는 두 풍경에서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잊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을 본다는 건, 과거를 되짚는 일이다. 운명적으로 그러하다. 10년 묵은 사진엔 10년 전의, 방금 찍은 사진엔 방금 전의 과거가 묻어 있다.' (254쪽)

노순택의 사진은 전쟁과 돈이 설계한 불안과 망각의 시대, 그 앞과 뒤를 쫓는다. 그리고 기억해 낸다.

'나는 본다. 어떤 풍경은 보고 싶어서 보고, 어떤 풍경은 보기 싫지만 본다. 대체로 눈을 감지 않는다. 눈을 뜨는 것이 나의 일이다.' (282쪽)

끊임없는 망각의 틈에서 다시 돌아온 4월 16일. 기억하기보다는 망각하며 살아왔기에 자신이 스스로 두려웠던 그 날. 용기 내어 펼친 노순택의 '사진의 털'. 지나온 시대의 기록과 기억의 풍경 앞에 터지는 가슴을 확인하는 순간. 짧은 기사 하나가 날아온다.

'박 대통령은 후안 마누엘 산토스 콜롬비아 대통령이 주최한 만찬에서 콜롬비아의 대문호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발언을 인용, "가슴을 가진 사람에게 망각은 어렵다"고 말했다(연합뉴스 4월 19일 기사)'.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