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는 우리 가족 곁을 떠났다. 설을 이틀 앞둔 깊은 밤, 어머니께서 아버지의 운명 소식을 전화로 알렸다.

"자야, 네 아버지가 가셨다."

작별 인사도 없이 홀연히 아버지가 떠나신 지 20년이 지났다. 여든여섯 살의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말씀하신다.

"네 아버지처럼 자는 듯이 갔으면 좋겠다. 자식 고생 안 시키고."

"어머니,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세요. 아직도 건강하신데…."

고령으로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는 어머니의 마음을 왜 모르랴. 나 또한 중년이 되고 잔병치레가 잦아지면서 예순다섯 살의 나이로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나신 아버지가 원망스럽다가도 노환의 고통에 시달리지 않은 것을 위안으로 삼기도 한다.

특히 이상운 소설가가 노환으로 병석에 누운 아버지 곁에서 기저귀를 갈고 병시중을 들면서 인간의 노화와 죽음에 대해 쓴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를 읽다 보면 어머니가 늘 말씀하시는 '죽음의 축복'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저자의 아버지는 어느 여름날, 고열로 병원에 입원하면서부터 죽음의 과정에 들어가게 된다. 병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버지는 극도의 불안과 초조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아야! 아야!" 곡소리 같은 섬망 병증을 보이며 집에 가자고 조른다. 결국, 아들은 아버지를 모시고 고향 집으로 간다. 저자는 아버지를 전문적으로 돌봐줄 요양병원을 찾아다녔지만 적합한 곳을 찾지 못한다. 고민 끝에 아버지가 당신 집의 당신 이부자리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해드리기 위해 서울 생활을 접고 포항의 아버지 집으로 내려온다. 그렇게 작가는 3년 반 동안 아버지의 죽음 여정에 동행한다.

시력, 청력을 잃고 정신마저 혼미해지는 아버지를 돌보는 심정을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 같다. 되돌아나갈 수 없는 터널, 출구가 보이지 않지만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터널!"이라고, 아버지를 통해서 체험한 인간의 죽음 과정이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의 현장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시간을 통해 아버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 죽음에 대처하는 우리의 현실에 관해 많은 배움과 마음의 가르침을 얻을 수 있어서 오히려 아버지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초고령 환자였던 아버지를 돌보면서 경험했던 우리나라의 종합병원시스템, 요양병원의 문제점, 노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수준 등을 진솔하게 전하고 있다. 특히 고난의 현대사를 함께해온 우리 부모세대가 인생의 마무리와 죽음에 대해 거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아버지의 마지막 세월을 꿋꿋이 함께한 고령의 어머니에게 감사와 위로의 말씀을 전하며 세상의 모든 간병인에게 이 책을 바친다는 마지막 장을 덮노라니 마음이 무겁다. 이별이 무서워 회피할 것이 아니라 어머니께서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 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슬프다.

부산시민도서관 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