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김중하(76) 전 부산대 교수가 '축사'를 했다. "젊은 작가들이 분발할 수밖에 없게 됐다. 나이 많은 두 작가가 나이를 잊은 창작 활동을 더 오래 건강하게 해주시기 바란다."

이날 봄날 야외 출판기념회의 주인공 이규정(78) 소설가가 이어받았다. "부산소설가협회 봄나들이 자리에 간단하게 출판기념 순서가 있을 줄 알았지, 이렇게 기념패와 꽃다발까지 준비했을 줄 몰랐다. 나이가 많지만, 최선을 다하겠다. 격려와 지도를 당부드린다." 그는 얼마 전 장편역사인물소설 '번개와 천둥'을 펴내 이 자리에 초대됐다.

또 한 명의 주인공 김성종(74) 소설가는 중요무형문화재에 인사말 부문이 있다면 예능보유자로 지정하고 싶을 만큼 멋진 인사말로 널리 알려졌다. "지금까지 책을 50여 종 냈지만, 왠지 어색해 출판기념회를 한 번도 안 했다. 이번이 처음이다." 그가 말을 이었다. "내가 74세인데 지금에야 철이 들까 말까 한다. 그런데 주위에서 나더러 '노인 행세'를 해달라고 은근히 압박한다. 그럴 수는 없다." 그의 결론은? "아직 만족할 작품을 못 쓴 게 아쉽지만, 바로 그 점이 내 생명을 유지해주는 비결이다. 열심히 쓰겠다". 김성종 작가는 최근 연작소설 '달맞이언덕의 안개'를 펴냈다.

지난 16, 17일 부산소설가협회(회장 박명호)가 '어느 봄날의 초대'라는 행사를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고등골마을 소설가 고금란 씨 집에서 열었다. 소설가협회의 봄나들이였고, 후배들의 젊음이 무색하도록 정열 넘치는 창작을 지속하는 선배 작가를 위해 마련한 출판기념회였다.

'얼마나 올까' 싶었는데 마흔 명 넘게 참가한 대형 행사가 됐다. 소설가들의 '맨얼굴'을 찍으러 온 사진가 김홍희, 대금 연주 축하공연을 하러 온 조성래 시인 등을 빼고 소설가만 서른 명을 넘겼다.

이렇게 부산 소설계 남녀노소가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 김에 뜻깊은 이야기를 들려준 이는 김중하 문학평론가였다. 그는 "요즘 부산 소설가들이 다양한 작품을 활발히 쓰는 모습을 보며 기분이 좋다. (작품 창작에서는) '요산의 그늘'을 벗어나야 한다고 내가 오래전부터 말해왔는데, 이제 슬슬 벗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김 평론가는 요산 김정한 소설가를 깊이 연구한 학자이며, 요산기념사업회 이사장, 초대 요산문학관장을 지냈을 만큼 요산을 높이 사고 존경한다. 하지만 창작에서만큼은 오래 전부터 "요산 그늘에서 벗어나라. 제발 연애소설 써라"하며 끊임없이 부산 소설가들에게 쓴소리했다. "그러다 욕도 많이 먹었다"고 그는 털어놨다.

그가 '요산 그늘 벗어나고 연애 소설 제대로 한 번 써보라'고 했던 건 삶의 다양한 모습을 반영하는 다채로운 소설을 쓰지 않으면 부산 소설은 앙상해진다는 조언이었다. 다행히 요즘 부산 소설계에서 나오는 작품은 훨씬 다채로워졌다. '요산 그늘을 슬슬 벗어나고 있다'는 김 평론가의 말은 이를 짚은 것이다.

그 대열 앞자리에 이규정 김성종 이복구 김문홍 같은 선배 작가들이 있고, 후배들은 분발을 다짐하는 부산 소설계 특유의 활력을 느낀 '어느 봄날의 초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