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장소와 사람과의 만남에서 생기는 기대를 동반한다. 새로운 풍경과 조우하거나 우연히 접어든 길에서 여행의 동기에 관해 곱씹을 시간을 제공받기도 한다. 장건재 감독의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일본의 고조라는 소도시에서 일어나는 영화와 꿈의 관계를 오래된 공간과 사람들, 불꽃놀이, 살포시 다가온 로맨스와 백일몽으로 풀어낸다. 마이클 윈터버텀 감독의 '트립 투 이탈리아'는 영국의 시인 바이런과 셸리의 흔적을 찾아 나선 두 중년 남성의 여행담이자 이탈리아 영화사에 대한 자유로운 횡단이다. 두 편의 영화가 여행을 다루는 방식은 다르지만,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 사유하도록 만든다는 공통점이 흥미롭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에 해당하는 흑백 화면의 정갈함은 현재 노인만이 오랜 동네를 지키고 있는 고즈넉함의 풍경에 잠긴 과거의 흔적과 현재의 삶을 표현한다. 빛바랬지만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한 질감이 2부에서 진행될 영화로 매끄럽게 이행되면서 시·공간의 탐색(흑백)과 영화라는 결과(컬러)가 연결된다. 2부는 고조를 찾은 영화감독의 감각에 새겨진 무형의 영화가 스크린에 투영되면서 편안한 리듬에 담긴 조용하고 정갈한 삶이 한낮의 백일몽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트립 투 이탈리아'의 중년 남성들은 로마에서 '로마의 휴일'과 '달콤한 인생'을 이야기하고, 폼페이 유적지에서는 '이탈리아 여행'을 비롯한 로셀리니의 영화를 떠올린다. 아름다운 풍경에 흘러가는 시간의 무상함을 덧입히고 흔적으로만 남은 역사적 사건을 풀어놓지만 그들이 이탈리아 영화사에 대해 나누는 대화와 촌철살인의 유머 감각, 성대모사를 통해 유쾌함을 전달하기도 한다. 이 영화는 여행지에서 만날 수 있는 맛깔스러운 음식과 로맨스, 풍경이 불러오는 기억이 문학과 영화, 대중음악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지적인 대화와 연결되는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1부와 2부의 인물과 이야기가 경계 없이 서로를 향해 열려가는 과정을 통해 낯선 곳에서의 경험이 스크린에 옮겨지기까지의 과정을 꿈이라는 키워드로 압축해서 풀어낸다. 이 영화의 편안함과 깃털처럼 가벼운 고요함은 세밀하게 조율된 카메라의 움직임과 섬세한 연기, 이방인들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고조의 노인들로 인해 풍성함을 획득한다.

'트립 투 이탈리아'는 소설 '프랑켄슈타인'과 셸리의 묘지를 오가고, 영화 '대부''이탈리안 잡'과 '경멸'의 세계를 통과하며, 슈트라우스와 레너드 코헨의 음악을 넘나들면서 수다를 이어간다.

한편은 떠들썩한 향연이고 다른 편은 고요함과 섬세함의 시간으로 채워진 영화인데도 이들이 불러내는 '영화적인' 순간과 만나도록 이끈다. 관광상품처럼 치장된 슬로무비가 제공하는 유사여행의 안일함과 거리가 먼 두 영화가 반가운 것은 이 여행담이 사람과 시간, 공간, 영화를 향해 열려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