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부산 감천문화마을을 어슬렁거리다 이곳에서 사랑방 구실을 하는 '감내카페'에 가서 아이스 홍시 팥빙수를 먹었습니다. 아이, 시원해!

여름 휴가가 시작하는 칠월이 되니, 가슴이 설렙니다. 휴가만 오면 이 거추장스러운 일터의 옷을 벗고 나비처럼 사뿐사뿐…. 하고 싶었지만, 미뤄놔야 했던 희망사항 목록도 하나하나 지워나갈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여름이니까~아이스 홍시이~' 읊조리며 팥빙수를 먹다가 '잠깐, 여름이니까~아이스 독서!' 이러면 어때? 하는 생각이 글감으로 퍼뜩 떠올랐습니다. 출판가에서 전하는 소식으로는 가을이 독서의 계절인 건 지난 세월 이야기랍니다. 이젠 가을이 됐다고 해서, 딱히 책이 더 많이 팔리지 않는다는 뜻이죠. 그럼 언제냐? 평생 친구처럼 함께 가야 할 책을 놓고 계절 따지는 게 좀 안 어울리기도 합니다만, '그나마 휴가철'이라 합니다.

알랭 바디우라는 철학자가 이런 말씀을 하셨더군요. "사랑은 개인인 두 사람의 단순한 만남이나 폐쇄된 관계가 아니라 무언가를 구축해내는 것이고, 더 이상 하나의 관점이 아닌 둘의 관점에서 형성되는 하나의 삶이라 하겠습니다."(알랭 바디우 지음·조재룡 옮김 '사랑예찬' 중) 같은 책에서 이렇게도 말했네요. "욕망이 즉각적인 힘이라면, 사랑은 정성과 재연(再演)을 요구합니다. 사랑은 반복 체제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책의 바다를 떠다니다가 이런 대목을 만나면 청량감을 느끼는데, 이 말은 책 읽기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폐쇄된 관계가 아니라 무언가를 구축해내는' 과정이고, '정성과 재연'을 요구한단 말이지? 이 사랑법은 좋은 독서법 그 자체로구만하고요.

그래서 아이스 홍시 팥빙수에서 시작한 생각의 꼬리 물기는 어느덧 좀 엉뚱한 질문에 닿았습니다. 책이 '그나마' 사랑받는다는 휴가철에 어떤 책을 다시 만나 정성과 재연으로 맞이해볼까. 역시나 여행과 관련한 책이 많았습니다. 생각만 해도 설레는 여행을 더 설레게 해주는 책을 조금이나마 나누고 싶은 마음에 그 중 몇 권을 올려보는 것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독립·민주화 운동가 장준하 선생의 '돌베개'(지난 5월 돌베개출판사에서 개정판 나옴)는 길 위에서 발로 쓴 책 가운데 최고 반열에 올릴 만한 책이라 믿습니다. 맑은 마음을 지닌 20대 청년 장준하와 친구들이 항일대장정에 나서 온갖 고난에 부딪히고 이겨내며 성숙해가는 모습은 생생하고 아름답습니다.

2008년 김영사에서 나온 중국 작가 장룽의 장편소설 '늑대토템'(전 2권)만큼 몽골 초원의 자연과 삶, 늑대와 사람의 처절하고 신비로운 관계를 잘 그려낸 책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 싶습니다. 이 책을 읽은 뒤 몽골 여행을 다녀온 것은 제게 큰 행운이었습니다. 허영만 만화가도 장편만화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에서 이 책을 참고했음을 밝혔죠.

일본 만화가 하야세 준의 만화 시리즈 '에키벤'(AK코믹스) 또한 좋은 여행책이죠. 에키벤은 열차 역에서 파는 도시락입니다. 일본 명소를 샅샅이 다니면서 명승지를 안내하고, 무궁하게 다양한 도시락 세상을 보여줍니다.

해외여행 갔을 때 미술관을 자주 찾게 되지요. 리즈 리딜의 미술 감상 안내서 '그림이 보인다'를 미리 읽고 가면 도움이 될 듯합니다.

여기서 일단 줄이겠습니다. 여러분의 여름 독서 목록도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