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잠에서 깨어 지난 여름밤 머릿속을 캔버스 삼아 휘갈겨 놓은 꿈을 떠올려 보았다. 강렬하거나 나른하게 늘어진 순간들 모두 선명한 이미지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여기 그 일련의 모습과 흡사한 영화적 순간들을 담고 있는 책이 있다.

아담스 시트니가 쓴 미국 아방가르드 영화에 관한 책 '시각영화'가 담아내는 영화는 일반적으로 연상할 수 있는 형태의 영화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시트니는 미국 할리우드 시스템에서 만든 영화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진해 온 아방가르드 영화의 역사에 주목한다.

1940년대 미국 아방가르드 영화는 마야 데렌의 등장으로 첫 번째 절정기를 맞는다. 물론 데렌의 영화가 할리우드 시스템에서 만들어진 영화만큼 대중성을 담보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후의 올가미'(1943)는 데렌과 그의 남편이자 촬영감독으로 각광받던 알렉산더 헤미드에 의해 만들어졌다. 영화는 촬영행위를 통해 형상화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몽환의 영역을 복잡한 나선형 구조물과 이미지의 진행으로 표현해낸다.

일관성 없이 등장하는 슬로우 모션은 우리가 꿈에서 느끼는 기이한 체험과도 같다. 무질서한 패닝과 핸드헬드의 사용으로 장면의 연결을 부드럽고 반복적인 형태로 구성한다. 데렌의 작품들이 느슨한 내러티브를 유지한 채 초현실적인 영화언어를 가지고 있다면, 이후 미국의 아방가르드 영화는 내러티브라는 영화의 관습적 조건을 버린다.

1950년대 미국 서부 해안에서 독보적으로 작업을 이어 온 스탠 브래키지는 '독 스타 맨'(1966)이라는 기념비적인 영화를 포함해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다수 작품을 만들었다. 그의 작업방식은 영화의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요소인 필름을 자신이 구조화한 영화적 터치를 통해 변형시키는 것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 브래키지의 영화를 관람하다 보면 상영되고 있는 스크린의 이미지가 눈에 바짝 달라붙어 작품 상영이 끝난 뒤에도 떨어지지 않고 잔상으로 길게 지속되는 순간을 경험한다.

이 경험을 통해 관객은 그의 작품이 순수한 눈의 영화라 불리는 것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게 된다.

이때 즈음 미국 아방가르드 영화에 구조영화라는 강렬한 흐름이 출현한다. 시트니는 구조영화의 특성을 고정된 위치에서 촬영하는 카메라, 깜빡거리는 플리커 효과, 반복을 만들어 내는 루프 프린팅, 그리고 인화한 필름을 다시 한 번 인화하는 리포토그래피 등으로 정의한다. "워홀은 다른 이들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아방가르드 영화를 시작하였다.(…)그는 이미 한 매체에 통달한 예술가였는데, 또 다른 분야에 재미가 아닌 전념을 하려 하였다. 그는 즉시 중요한 영화들을 제작하기 시작했다.(425쪽)"

시트니는 구조영화의 주요 선구자로 예술계의 슈퍼스타이자 8시간동안 상영되는 '엠파이어'(1964)를 제작한 앤디워홀을 꼽는다. 그리고 마이클 스노우, 홀리스 프램튼, 어니 기어, 브루스 베일리, 제임스 베닝 등 이미 전설이 된 수많은 영화작가가 있다.

시트니는 대부분 영화가 상품이 된 현재의 관점이 아닌, 순수한 예술의 맥락에서 영화를 읽으려고 했다. 예술이었던 영화, 예술이어야 할 영화에 대해 고민했던 시트니의 '시각영화'는 지난 여름밤 꾸었던 꿈처럼 보아도 보이지 않는 영화의 조금은 불친절한 안내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