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다. 구입한 기억이 전혀 없는 책이 책장 한켠에 꽂혀 있다. '발자국을 포개다'라는 제목에 이끌렸을 수도 있고 파란 글씨의 소제목, '배재된 자들의 민주주의를 향하여'에 흥미를 느꼈을 수도 있겠다. 표지 오른쪽에 강경식, 고동민, 김소연을 비롯한 열다섯 명 필진 중 아는 이름도 없다. 인터넷으로 책을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홈페이지에 들어가 구매내역을 확인하면 될 테지만 나는 그대로 책을 빼어 들고 책상에 가 앉았다.

표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눈이 내리는 풍경 속에 검정색 점퍼를 입은 사람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 사람들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김 때문에 눈 오는 풍경은 흐릿하지만, 눈 쌓인 길에 찍힌 사람들 발자국은 선명하다. 한 방향으로 난 발자국은 제각각이지만 발자국마다 두세 개씩 겹쳐 있다. 모두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발자국을 포개다'에는 2012년 대선 당시 노동자 대통령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던 김소연과 그녀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김소연은 89년 첫 직장인 청량리 정신병원 원무과에서 여직원으로 시작해 92년 갑을전자, 2002년 기륭전자 현장에서 일하면서 노동현장문화개선과 비정규직 고용 문제와 관련해 투쟁을 벌였다. 그런데 대통령 후보 앞에 붙은 '노동자'라는 글귀가 눈에 띈다. 그녀의 이력으로 본다면 특정한 정당에 속하지 않는 무소속이라는 표지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만 노동자대통령 후보라는 표지에 담고자 하는 그녀의 의지는 무엇인지 궁금했다.

'발자국을 포개다'에서 김소연과 그녀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확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 비정규직 투쟁을 거치면서 그들이 깨달은 것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새정연)의 차이보다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차이가 훨씬 크다'는 사실이었다고 한다. 비정규직과 그들의 투쟁 현장을 외면하는 민주노총 대표, 진보 계열이라 자처하며 민주주의를 외치는 야당 정치인들을 목격했을 뿐이라고 한다.

배제된 자들을 다시 배제하는 이중의 배제, 김소연은 이 문제가 바로 자신이 노동자대통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한 이유라고 말한다. 새로운 노동 주체로서 '노동자를 위한 정치'가 아니라 '노동자의 정치'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고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노동운동의 근간이 돼야 한다고도 말한다.

스스로 투쟁의 주체가 되고 목소리를 낸다는 건 한국 정치계를 좌지우지하는 주류와 비주류 정당, 삼성 등 한국 제1의 자본권력과의 싸움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실패한 노동정치의 복원에 대한 고민도 있었지만, 김소연은 노동자를 중심으로 특정 정파를 넘어서 함께 힘을 모아 새로운 노동정치를 만들어가자는 결론을 내렸다 한다.

기존 정치와 자본의 논리가 아닌 노동자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선택'이라고 고동민 씨는 말한다. 나는 다시 책의 표지를 들여다본다. 그러고 보면 검은색 점퍼 차림 사람들이 향하는 곳이 어디인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앞선 이들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것, 무엇보다 바닥에 새겨진 발자국 위에 내 발걸음이 닿기까지 그 발자국의 이력을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물론 앞선 발자국은 검정색 점퍼 뒷면에 새긴 희망, 배제된 자들의 목소리가 놓일 자리를 만들 희망을 담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