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뚜름하게 적힌 표지의 제목을 오래도록 들여다본다. 소설집의 첫 번째 단편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파란 나비 효과 하루. 표지의 제목은 한 단어씩 세로로 배열되어 있다. 그런데 배열된 단어와 단어 사이에 아무런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

관계가 불분명한 단어의 배열이 내용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이야기를 읽으면서 오히려 더 난감해지는 기분이다. 썩은 사과, 스토커, 나, 음악 하는 서. 이름도 모호한 젊은이들이 난데없이 동물원에서 만나며 시작되는 이야기. 서로 잘 아는 사이인가 싶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들은 정보가 전부다. 그들의 만남은 우연적이다. 행동은 즉흥적이면서도 엉뚱하고 주고받는 대화는 데면데면하거나 퉁명스럽다. 굳이 땡볕 더위를 뚫고 찾아간 동물원 우리에는 동물이 없다.

유령이 나타나거나 혹은 아예 유령인 화자가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여전히 유아기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은 듯한 인물들과 파란나비원숭이와 관련된 상상이 재기발랄함과 유쾌함만을 담지하고 있지는 않다. 인물들의 유머러스한 입담에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곧바로 씁쓸해지는 이유는 소설 속 인물들이 노동인구의 절반에 육박하는 비정규직 청년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회적 지위가 경쟁에서 패배했거나 노력부족에 따른 당연한 결과로 치부하는 사회체계 내에서 원인과 결과는 애초에 어긋나 있다.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사회 밑바닥에 내몰려야 하지만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문법이 여전히 통용되는 사회. 분노와 발악에 일그러지거나 은둔형 외톨이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 아무도 원인 규명을 해주지 않는 사회. 그러니 인물들 스스로 자신의 존재 근거를 찾아 나설 수밖에.

인물과 인물 사이의 갈등,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서사 구조를 파악하려는 읽기 방법은 잠시 접어 둔다. 생각의 출발점을 다시 제목에서부터 시작한다. 소설집 전체 제목이기도 한 '파란 나비 효과 하루'와 '안녕, 동물원, 안녕' '아빠, 유령, 문법' 등은 소설 속 인물들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소설 읽기의 실마리는 연결어미나 조사 없이 단지 단어들만 나열되고 있다는 것에 있다.

이를테면 '파란 나비 효과 하루'의 경우, 화자는 자살을 생각하며 청량리 행 열차에 올랐지만 결국은 집으로 돌아온다. 그 이유는 자신을 끈덕지게 쫓아오는 파란나비원숭이 때문이다. 소보로빵을 두고 원숭이와 씨름하다 집으로 돌아온 화자는 '파란나비원숭이가 구애한 대상이 자살하려고 할 경우, 필사적으로 말리는 습성이 있다'는 정보를 인터넷에서 얻는다.

이야기는 이 정보에서 끝나지만 이야기의 해석은 내 몫이 된다. 우선, 자살하려던 화자를 계속해서 따라다니는 파란나비원숭이 때문에 화자가 다시 삶에 대해 희망을 품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제목에서 파란나비는 파란나비원숭이와 삶이라는 큰 선물을 안겨준 나비효과의 의미가 합쳐진 것이라고 생각해도 될까. 그런데 거기에 더해진 하루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러한 희망이 불과 '하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까, 아니면 화자가 그 문장을 두고 '죽을 때까지 기억하고 싶다'고 했으니 그 '하루'가 오늘의 삶을 계속해서 연장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연결어미나 조사가 생략된 단어 사이의 빈 공간을 들여다본다. 거기에 사회적이고 문법적인 의미가 아니라 내 나름의 의미가 생겨나고 내 식으로 이야기를 구성해보는 재미가 있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