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간다고 버텨도 기껏 100년이다. 그래도 길어졌다. 조선 시대 왕들의 평균수명은 47세, 1800년 무렵 유럽인은 35세에 불과했다. 1997년 숨진 최장수 인간, 장 칼망은 고작 122세였다. 이 책의 장수 나무가 보기엔 그렇다.

그리스 크레타 섬의 올리브 나무는 3000살인데 지금도 올리브를 맺는다. 첫 올림픽 성화가 올랐을 때 이미 200살 고참이었다. 이 나무가 진시황이 만드는 병마용을 보려면 800년이나 지겹게 기다려야 한다. 크레타 섬의 자랑인 나무에서 4년마다 가지를 꺾어 올림픽 월계관을 만든다. 나무의 장수에 대해서는 닭한테 감사해야 한다. 오래된 다른 나무들은 몽땅 베어졌지만 속이 빈 이 나무는 닭장으로 사용되는 바람에 살아남았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파머 참나무는 1만3000살이다. 이 나무가 8400살이 되어서야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를 짓기 시작한다. 호주 퀸즐랜드 주에 사는 남극 너도밤나무는 원래 남극에 살았다. 남극의 기구가 온화했던 1억8000만 년 전에 말이다. 남극이 추워지자 난민이 되어 한 발 한 발 북상하기 시작했다. 호주에서 살고 있는 남극 너도밤나무 중에는 1만 살을 훌쩍 넘긴 나무도 있다.

책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나무 이야기로 차 있다. 뉴욕의 예술가인 저자가 직접 현장을 찾아가 찍은 사진과 그 나무에서 느낀 소감을 담아놓았다. 가로로 긴 책 판형이 예쁠 뿐만 아니라 사진도 인상적이다. 그녀는 장수 식물을 찾기 위해 남미와 북미의 오지, 아프리카, 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남극까지 찾아간다. 왜 그렇게 장수 식물에 꽂혔을까?

일본 여행을 가서 그녀는 조몬 삼나무 얘기를 들었다. 7000살이나 된 나무로, 규슈 섬의 남단에서 배로 몇 시간을 가야 하는 야쿠시마 섬에 있으며 섬에 도착하고 나서도 이틀을 꼬박 걸어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흥미가 동한 레이첼은 마음의 소리를 따라 야쿠시마로 가서 고대의 나무가 가진 고요한 아름다움과 힘을 알현했다. 뉴욕에 돌아와서 무언가 시작됐다는 느낌이 강해졌고 마침내 10년이 걸린 이 책 '위대한 생존'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오래 산 생물은 인간을 심원한 세계로 안내한다. 45억 년 전, 지구가 탄생한 후로 생명은 한 점 단세포에서 기나긴 길을 걸어 나무와 다세포 동물로 진화했다. 인간의 삶은 지구와 지구를 덮은 식물에 빚지고 있다. 식물이 없으면 인간도 없다. 2000년 이상 된 나무는 우리를 먼 과거와 잇고 지구에 진 빚을 깨닫게 한다. 나무는 푸른 지구와 인간의 끈끈한 결합과 공존을 일깨운다.

지금의 한국을 보자. OECD 자살률과 저출산 1위를 자랑하는 참담한 현실이다. 새 활로를 찾아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할 때다. 그럼에도 우리는 겨우 5년과 4년마다의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에 목을 매고 몇 발짝 앞도 내다보지 못한다. 지독한 근시다. 이 책의 장수 나무라면 원대한 전략과 담대한 화합을 권하지 않을까? 그리고는 돌아서서 중얼거릴 것이다. 하루살이 인간들! 정말 같잖아!

소설가·작가의 드론독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