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류의 20억 년 역사 보여주는 책

최초의 인류는 눈앞에 보이는 만물을 어떻게 구분했을까. 동물과 식물,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 가까이 하면 위험한 동물을 구분했을 것이다. 이것이 인류 최초의 분류였다. 그 분류는 생존을 위해서는 필수적이었고, 또 필사적이었다.

'분류의 역사'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문헌정보학 전공자로서 호기심을 느꼈다. 복잡해 보이는 학문의 세계와 그 많은 책들을 일목요연하게 체계화하는 십진분류법대로 집안의 모든 책을 정리하느라 난리법석을 떨었던 시절이 생각났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엄청나게 많은 책을 구입했고 그 책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는 것, 이집트의 왕들에게 도서관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 지 가르쳐 준 최초의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는 얼마나 흥미로웠던가.

그런 마음으로 펼친 이 책에서 나는 더 재미있는 사실들을 알았다. 저자는 분류가 최초의 인류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인류는 고대, 중세, 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분류하고, 또 분류하며 살아왔다. 분류작업의 축적이 곧 인류의 지성사라는 것이다.

뒤집기를 성공적으로 해낸 아기가 배밀이를 하면서 하는 행동 중에 하나는 손에 잡히는 거라면 입에 넣어보는 것이다. 이건 먹을 수 있는 것인가 아닌가 알아보는 게 아닐까. 좀 별난 남자아기들은 손에 들어오는 물건을 일단 던져보면서 그 안전성을 확인하기도 한다. 이건 가지고 놀 수 있는 것인가 아닌가 하면서. 물론 먹을 수 없거나 위험한 물건을 어른들이 재빨리 빼앗아 '해당사항 없음'으로 분류해주기도 한다.

아기였을 때처럼 분류해야 할 대상이 단순하다면 세상 살기 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분류하고 선택해야 할 대상은 점점 많아진다. 그렇게 인류가 살아오는 동안 고대에서 현대로 오면서 정보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양으로 축적됐다.

이 책은 20억 년을 아우르는 정보시스템의 역사를 말해준다. 정보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이다. 정보 기술은 최근에 생긴 것이 아니다. 정보기술자는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다. 문자가 생기기 전에도 그림과 기호로 정보를 기록했다. 점토판, 파피루스, 양피지, 죽간, 종이로 발전하면서 정보량도 늘어났다. 인터넷 시대의 인류는 '정보의 쓰나미' 속에서 살고 있다. 분류의 범위와 방법 역시 확장되고 있다. 그리고 인류는 분류본능을 가지게 됐다.

저자는 정보를 습득하고, 분류하고, 관리하고, 배포하고, 전승하고, 이러한 과정에서 새로운 정보와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인류의 습성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습성은 유전자 속에 내재되어 진화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동서고금을 통해 살아남은 분류체계는 현대의 분류 체계 속에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 체계는 디지털 시대의 인터넷 메뉴 구조와 정보 설계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인터넷 속에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개인은 자신만의 분류법으로 카테고리를 만들어내고, 더 큰 집단은 그들대로 분류체계를 세운다. 그래서 저자는 "분류는 본능이다, 권력이다, 역사다"라고 말한다. 쉬운 책은 아니지만, 정보화 시대의 뿌리를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참, 가끔 기존의 분류체계를 완전히 뒤집는 사람들도 있다.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은 '포유류의 동물'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분류명을 선택하기도 한다.

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