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어느 문화기행 프로그램을 보다가 시청자로서 잠시 당혹스러웠다. 유럽 문화에 능통한 지식인으로 보이는 프로그램 속 해설자는 유적지를 돌며 설명하는 중이었는데 어느 곳엔가 멈춰 서더니 그곳의 예술적 양식에 영향을 준 나폴레옹의 업적을 찬미하는 것 같은 발언을 잠시 들려주었다. 내 귀를 의심했다. 나폴레옹이 유럽의 예술 혹은 문화사에 미친 영향력을 인정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해도 그가 과연 찬미되기까지 할 인물인가 싶어서였다. 그의 실체는 정복자다. 그리고 나는 정복자의 이름들은 아이들을 위한 위인전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믿는 쪽이다. 그 정복에 수반되는 모든 악행과 불행에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히틀러와 나폴레옹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을 관람할 때 두 가지 인상이 공존했다. 누누이 들어 왔던 거대한 규모를 몸소 실감하게 되자 현기증이 날 정도였고 눈으로 다 담지 못하는 수많은 명작과 명품들은 실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다른 생각도 들었다. 박물관의 소장품들이 공식적인 매입을 통하여 충족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으므로 더 그랬을 것이다. "참 많이도 훔쳐다 갖다 놨구나" 나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빈의 미술사 박물관에서 일했으며 근대의 가장 비범한 미술사가 중 한 명인 에른스트 E 곰브리치가 아이들을 위해 재미있게 써냈던 '곰브리치 세계사'(자작나무 펴냄)안에는 나폴레옹의 부분도 물론 빠지지 않고 수록되어 있는데 나폴레옹이 유럽의 다른 지역을 침략해 나갈 때 벌인 행적들 중 하나를 묘사한 대목이 우리의 눈길을 멈춰 세운다. 곰브리치는 "나폴레옹은 마음에 드는 훌륭한 예술작품이 있으면 모두 파리로 보냈다"고 적고 있다.

최근 개봉한 '프랑코포니아'는 러시아의 뛰어난 영화감독 알렉산더 소쿠로프가 루브르 박물관을 소재로 만든 영화다. 여기에는 저절로 주목하게 되는 말들이 많이 등장한다. "어쩌면 루브르가 프랑스 전체보다 더 가치가 있으려나"하고 질문을 던진 소쿠로프는 "루브르가 프랑스 권력을 따랐음을 잊어선 안 된다"거나 "국가와 예술은 목표가 대개 일치하지 않는다"고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으로 말한다. 특히 소쿠로프는 이 영화의 가장 결정적인 말을 영화 속 재연자로 등장하는 나폴레옹 스스로 하도록 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루브르 박물관을 유영하는 나폴레옹의 유령은 문득 힘주어 이렇게 말한다. "예술 작품들의 기원은 전 세계이지만 그것들이 어디에 놓일지는 오직 전쟁이 결정하지."

'프랑코포니아'의 주된 내용 중 하나는 1940년에 프랑스 파리를 점령한 나치즘 안에서 루브르의 예술품들이 놓이게 된 그 위태로움이다. 독일의 한 양심 있는 관료의 지혜 덕분에 그것들은 보존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감독 소쿠로프는 나폴레옹의 전리품이 다시 히틀러의 전리품이 되고 만 루브르의 그 아이러니한 역사적 순간을 주목한다. 정복자의 전쟁 혹은 권력이 예술작품의 존립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한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이 소쿠로프가 박물관을 소재로 연출했던 자신의 또 다른 영화들 '여행자 엘레지','러시아 방주'와의 큰 차이일 것이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