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잘 쓸 수 있는 요령을 단기간에 전수해주겠다'는 말은 위험하고 허무하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왜냐? 좋은 글의 밑바닥 또는 심장부에는 반드시 '좋은 생각'이 있다. 이 좋은 생각을 펼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 기술 또는 요령이다. 글을 잘 쓰는 기술이나 요령은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좋은 생각이라는 쌍둥이 형제가 곁에 없으면 좋은 기술은 거의 아무런 일도 못 하는 외로운 신세일 뿐이다. 여기에서 좋은 '생각'은 사상이나 철학이라는 낱말로 바꿔도 좋다.
그러니 '글 잘 쓰는 요령을 단기간에 전수해주겠다'는 약속은 지키기 어렵다.(특히 저 '단기간'이란 유혹에 유의할 것) 글을 쓰는 데 도움을 주는 궁극의 무기는 생각과 삶을 바꾸는 것이다.

고전연구가 한정주 씨가 쓴 글쓰기 동서대전은 새로운 관점을 담은 새로운 책이다. 지금껏 글쓰기에 관한 이런 책은 보기 어려웠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데는 고전이 최고이지만, 꼭 고전이 아니라도 음악이나 그림 심지어 음식을 갖고도 인문학은 배울 수 있다. 이와 똑 떨어지게 같은 의미에서 '글쓰기 동서대전'은 글쓰기로 인문학을 공부하는 책이다. 글쓰기로 본 인문학, 글쓰기의 인문학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저자는 14세기부터 20세기에 살았던 최고 문장가 39인을 가려 뽑았다. 중심은 18세기의 인물들이다. 이들을 여러 범주로 나누었다. 그 범주는 9가지이다. 동심의 글쓰기, 소품의 글쓰기, 풍자의 글쓰기, 기궤첨신의 글쓰기, 웅혼의 글쓰기, 차이와 다양성의 글쓰기, 일상의 글쓰기, 자의식의 글쓰기, 자득의 글쓰기이다.

등장하는 인물의 면면도 살펴보자. 이덕무, 이탁오, 루소, 니체, 이익, 바쇼, 장대, 프란시스 베이컨, 박지원, 오경재, 나쓰메 소세키, 조너선 스위프트, 이용휴와 이가환, 이하라 사이가쿠, 공안파, 볼테르, 홍대용…. 어떤 이는 낯설고 어떤 이는 친근하다. 이들 사상가와 문필가의 글을 고루 읽고 거기에서 글쓰기의 핵심을 뽑아낸 저자의 공력이 느껴진다.

더구나 이들 등장인물이 동양과 서양으로 대별된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예컨대 이렇다. "18세기에 들어와서 이 동심(童心)을 하나의 문장미학으로 끌어올린 대표적인 이가 청장관 이덕무이다.…이렇듯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동심'을 미학의 본원이자 창작의 원동력으로 바라본 새로운 사고가 18세기를 전후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해 여러 세대의 문인과 철학자들을 사로잡았던 지성사적·문학사적 현상과 사건이 되었다는 사실은 역사가 입증하고있다."(17, 29쪽)

동심을 놓고 좋은 문장, 절정의 명문을 남긴 이들을 탐색하던 책은 이렇게 글쓰기의 인문학으로 영역을 시나브로 넓혀간다. 매력적인 구성이다.

중국 사상가 이탁오나 글쓰기의 진정한 혁명가 박지원, 우리가 잘 몰랐던 오경재 등등. 이들의 글쓰기는 무엇을 우리에게 가르쳐줄까? 저자는 머리말에서 슬며시 밝혀놓았다. "이 책을 집필하면서 깨우친 글쓰기 철학 혹은 글쓰기 비결이 다름 아니라 '개성적인 글쓰기, 자유로운 글쓰기, 자연스러운 글쓰기'였다." 어떤 여정을 거쳐 저자가 이런 결론에 닿았는지 자꾸만 궁금해진다.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