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따분하다. 기적은 드라마에서나 벌어지는 법. 우리는 하루하루 평범한 생을 메우기에 바쁘다. 기적은 이제 타락까지 해버렸다. 도서관에서 '기적'을 검색하면, '기적의 돈 관리' '기적의 치료' '기적의 공부법' 같은 책이 줄줄이 이어진다. '기적'은 멀고, 이겨내야 할 '현실'은 가깝다.

하지만 눈을 크게 뜨면 기적은 우리 옆에 앉아 있다. 단지 우리가 놓칠 뿐이다. 기적이 일어나려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현대는 수만 킬로의 거리와 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인터넷이 마법사 구실을 한다. 이번 기적은 유튜브를 타고 나타났다.

1987년 초겨울, 부산에서 두 아기가 태어났다. 몇 달 후 한 아기는 파리에, 또 다른 아기는 뉴욕에 도착했다. 파리에 도착한 아기는 아나이스라는 이름으로 양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났다. 뉴욕에 도착한 아기는 사만다라는 이름으로 역시 행복하게 컸다. 25살이 되는 해 겨울, 아나이스는 유튜브를 통해 자신과 똑같이 생긴 여자가 미국에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배우로 일하는 사만다였다. 아나이스가 사만다의 드라마 동영상을 보면 볼수록 점점 자신을 보는 것 같아 어지러웠다. 그녀는 대체 누구일까?

둘은 일란성 쌍둥이였다.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통해 그들은 서로를 알게 되었고 마침내 런던에서 만나게 된다.

아나이스는 그 날의 만남을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나와 똑같이 생긴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사만다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었다. 내가 몸 밖에 있는 것이다."

사만다는 그 충격적인 해후를 이렇게 말했다. "처음으로 아나이스의 얼굴을 보니 무척 놀라웠다. 내가 아니었지만 마주 쳐다보고 있는 사람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나였다."

아나이스는 사만다에게 가까이 다가가 머리를 쿡 찔렀다. 환상이 아닐까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태어나서 몇 달 만에 헤어진 쌍둥이가 프랑스인과 미국인으로 만나는 기적이 일어났다. 자궁에서 같이 지냈다가 출생 후에 잃어버린 반쪽, 아니 한쪽을 찾은 것이다.

그 날 이후로 둘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미국의 쌍둥이 전문가인 시걸 박사가 그들의 유전자를 조사해 일란성 쌍둥이임을 확인했다. 둘을 정밀 검사하니 '작동 기억'을 제외한 모든 것이 유사했다. 아나이스는 패션 디자이너로 시각적인 능력이 뛰어났고 사만다는 배우였기에 암기력이 더 뛰어났다.

사만다는 자신의 만남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영화를 찍기 위해 미국의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제작비를 모금했다. 둘의 첫 만남을 비롯한 떨리는 해후를 담은 영화 '트윈스터즈'는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되었다.

전 세계에서 뉴스를 탔던 둘은 부산의 아이다. 이 둘을 초청해 부산 구석구석을 보여주면 좋겠다. 아마도 그들이 해외로 입양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경상도 가시내인 둘을 해운대나 광안리의 백사장에서 부딪치지 않았을까? 쟤들, 완전 똑같다 그치! 이렇게 말하면서 말이다. 부산에서 시작된, 이 얼마나 신비한 생명과 만남 이야기인가?

소설가·작가의 드론독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