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녀가 손수 뜯어온 해조류
- 기장시장 소쿠리에 소복소복

- 액젓에 조물조물 무쳐도
- 밀가루 묻혀 찐 털털이로도
- 생으로 초고추장에 찍어도
- 은은한 향 내는 바다 꽃 같구나

- 씹는 맛은 또 각기 달라 재미져
- 젓가락도 요리조리 신난다

여름 문턱으로 접어든다. 입맛이 떨어지는 계절이다. 몸이 찌뿌드드하고 만사가 귀찮아지는 것이다. 이럴 때는 뭔가 싱그럽고, 짭짤하고, 매콤하고… 등등의 것이 당기기 마련이다. 그럴 때 갯가 사람들은 잡어회를 떠 '새콤 달콤 매콤'하게 물회를 만들어 먹거나, 바다의 해조류로 여름 입맛을 다신다.

까막발이 반찬으로 차린 밥상. 밥을 중심으로 왼쪽부터 까막말이 털털이, 무침, 생까막발이.

여름 해조류의 무성한 이파리로는 쌈을 싸먹고, 식감이 좋은 것은 빡빡 무쳐서 먹고, 향이 좋은 것들은 해초밥을 해먹고, 시원한 국이나 구수한 된장국에도 넣어 한 뚝배기 끓여내다 보면, 더 이상의 진미 밥상은 없다는 것이다.

특히 한여름에는 녹아 없어지는 해조류가 많기에, 이맘때쯤이 그들을 밥상에 올려놓고 하나하나 곱씹어보는 마지막 시기이기도 하다. 어떤 해조류는 엽체가 두터워져 식감이 나쁘지 않고 특유의 해초향도 그럴듯하다.

◇ 추억의 음식, 바다의 별미

몇몇 시장에 들러 갖가지 해조류를 일별해 본다. 잎이 두툼해져 쌈 싸먹으면 그저 그만인 '돌미역'부터, 이제쯤 엽체가 굵어져 식감이 좋은 '톳', 새콤달콤한 초장에 국수 말 듯 비벼먹으면 개운한 '꼬시래기'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기장시장에는 기장해안에서만 채취되는 까막발이(까막살), 진도바리(진두발), 개내이(개냉이), 서실 등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해조류가 소쿠리 째 소복소복하게 담겨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 있지만, 보릿고개 시절 기장 해안마을의 사람들은 갯바위에 지천으로 자라는 해초를 뜯어다 시장기를 속였다. 해초를 보릿가루에 함께 넣어 보리죽을 끓이거나, 밀가루에 함께 넣어 범벅을 해먹었다. 아니면 밀가루를 묻혀서 찐 털털이 등으로 끼니를 잇곤 했던 것이다. 이러한 해조류들이 지금에 와서는 추억의 음식이나 별미의 음식으로 취급을 받고 있다.

'까막발이'도 마찬가지다. '까막발이'는 기장사람들이 가끔 별식으로 먹는 '까막발이 털털이'의 식재료. 원 학명은 '까막살'이다. '주름까막살', '가지까막살'과 차별하여 '참까막살'이라 부르기도 한다. 물이 들고나는 바위에서 주로 자라는 홍조식물이다. 몸체는 뿌리에서 뭉쳐서 나와 덩어리를 이루는데, 꽃송이 같기도 하고 코사지 같기도 하다.

씹어보면 다른 해초보다 질기다 싶을 정도로 꼬들꼬들한 식감이 난다. 주로 밀가루를 묻혀 털털이를 해먹거나 액젓으로 조물조물 무쳐서 먹는다. 생으로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오독오독한 식감에 상큼함까지 더해, 배 안 부른 술안주로 제격이라는 생각이다. 몇몇 식도락가는 찹쌀 풀을 입혀 튀각으로 만들어 먹기도 한단다.
◇ 해녀가 뜯는 개내이를 아는교

기장 사람들은 이 까막발이를 대부분 털털이로 해먹는데, 토박이일수록 '까막발 털털이'에 대한 추억과 향수가 많다. 시장상인들에게 까막발이 털털이에 대해 알아보고 있노라니, 장을 보던 주위 노인들이 "젊은 사람이 우째 까막발이 털털이를 아요? 참 얄구지라~" 하고 놀랜다. 그러더니 까막발이에 대한 이야기로 한참 이야기꽃을 피운다.

까막발 털털이는 쑥털털이처럼 까막발이에 밀가루를 골고루 묻혀 찜냄비에 적당히 쪄내기만 하면 된다. 쪄낸 털털이는 양념장이나 초고추장 등 기호에 따라 찍어 먹으면 되는데, 소금 간을 조금 했다면 삼삼하니 그냥 먹어도 괜찮다.

'진도발이'는 '진두발'의 기장 말. 홍조류의 해조로 가죽질이라 식감이 질기다. 까막발이보다 엽체가 넓고 두꺼워 삶아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장 사람 중 많은 숫자가 "털털이는 '진도발이 털털이'가 더 쫀득쫀득하고 맛있다"고 한다.

해초를 파는 해초전 할머니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나는 까막발이와 진도발이 둘 다 섞은 털털이가 좋더라"며 둘을 섞으면 쫀득거리는 식감도 강하고 해초의 풍미도 훨씬 진해 좋단다.

"모친, 이건 까시리 하고 조금 다른 것 같은데 뭔가요?" "이거는 '서모까시리'라꼬, 오돌오돌해서 초장에 찍어 묵어도 되고, 젓국에 무치 묵어도 된다. 쫌 주께 함 묵어 바라." 톳밥 하려고 톳을 조금 샀는데, 톳의 양만큼 서모까시리와 서실을 덤으로 안긴다. 나중에 알아보니 서모까시리는 '풀가시리'의 일종으로 '세모가사리'라는 해조류였다.

그 옆에는 오랜만에 개내이(개냉이)가 보인다. 반가운 마음에 "개내이가 통 안보이더마는 오늘은 있네" 하고 혼자소리를 하니 "개내이를 아는교?" 하고 아낙이 묻는다. "예. 몰(모자반) 종류 아닙니까?" "맞심니더. 모두 '몰'이라 카는데, 몰하고는 조금 다릅니더. 개내이는 방울(기포)이 좀 작아예." "요새 잘 안 보이던데요?" "예. 개내이는 해녀가 뜯는다 아입니꺼. 이 개내이는 우리 언니가 죽성에서 뜯은 깁니더." "언니가 해녀세요?" "예. '진경자'라꼬 죽성에서는 큰 해녀 아인교."

◇ 입맛 되살리는 해조류의 향연

톳을 넣어 끓인 된장국과 톳밥에 해초무침 한 접시를 곁들여 밥상을 차렸다. 해초무침 접시에는 톳, 서실, 서모까시리가 담겼다. 최원준 사진제공

해녀들이 동암마을, 죽성마을 등에서 채취한 까막발이 서모까시리 개내이 서실 등으로 여름 해초밥상을 차린다. 까막발이로는 '까막발이 털털이'와 '까막발이 무침'을, 톳으로는 '톳밥'을, 서모까시리와 서실은 액젓에 조물조물 무쳐냈다. 그리고 각각의 해조류를 생으로도 먹어보기 위해 여러 가지 양념장을 준비했다.

우선 톳밥을 푼다. 향기로운 해초향이 은근하다. 갈조류의 짙은 갈색이 밥에 배여 먹음직스럽다. 한술 뜬다. 쌀밥의 담백하고 고소한 맛에 은은한 해초 냄새가 살짝 받쳐줘 밥맛을 더한다. 다육질의 톳이 입안 여기저기서 아삭아삭 씹히면서 식감 또한 흥미롭다.

멸치액젓에 버무린 서모까시리를 맛본다. 풀가사리 종류이기에 손질할 때까지는 풀기가 있어 미끈대던데, 무쳐놓으니 꼬독꼬독 씹히면서 똑 부러지는 식감이다. 한 젓가락 크게 입에 넣고 우물거리니 입안에서 오돌도돌 난리가 났다. 젓갈 덕에 짭조름하면서도 구수한 맛 또한 일품이다. 서실무침도 한입 입에 넣어본다. 강한 갯내음이 바닷바람처럼 밀려온다. 멸치액젓과 잘 어우러지며 시원한 바닷가에서 밥상을 받는 기분이다. 가슬가슬한 식감은 대체로 부드러우면서도 혀에 착착 감긴다.

이들을 초고추장에 찍어 먹어보니, 이 또한 새콤달콤하니 입맛을 확 되돌린다. 서실은 부드러우면서도 향기롭고, 서모까시리는 달콤하면서도 오독오독대는 맛이 여간 재미난 것이 아니다.

톳밥에 참기름 두어 방울 떨어뜨린 후 양념장으로 비벼 먹는다. 아삭거리는 톳과 참기름의 고소함, 알싸한 땡초가 서로 합일하여 맛의 정점을 찍는다. 조미 김에 싸먹으니 이 또한 걸작이다.

요즘 많은 이들이 부산 지역 해초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다. 건강에 좋은 식재료이기도 하지만, 지역에서 생산되는 해초로 향토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자는 취지가 크다. 몇몇 유관단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고무적인 일이다. 더 나아가 해초의 연구와 산업화에도 눈을 돌려야 할 시기이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