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에 할배가 걸어서 한양까지 가던 시절이야. 일을 잘 보고 집에 돌아오는데, 호래이가 나타난다는 고개 근처에서 날이 저물어 뿟어. 그래가 할배는 어흠 어흠 하면서 담뱃대를 앞뒤로 흔들며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지. 아니나 다를까 뒤에서 호래이가 어슬렁어슬렁 따라오는 기라. 할배를 잡아 묵을라꼬. 그래가 별수 있나. 할배는 죽기 전에 담배 한대만 피자고 했어. 호래이캉 같이 맞담배를 폈는기라. 조금 있으이 호래이가 담배를 다 피우고 할배 장죽 끝에서도 연기가 사라질락 말락 했어. 호래이가 긴 혀로 자기주둥이를 핥았어. 할배는 죽기 살기로 눈을 꾹 감고 엎드리고 있다가 뜨거운 장죽 담뱃대 끝을 마주하고 있는 호래이 사타구니 밑으로 디밀었지. 그 순간 호래이가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며 펄쩍 뛰어 오르는 기라."

"으흐흐흐헝. 아앗 뜨거. 호랑이 살려."

"호래이가 공중으로 막 뛰어 오르더이 숲속으로 줄행랑을 쳤뿟어. 할배 덕분에 그 뒤로는 고개에 호래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아이가."

오빠와 나는 할아버지가 해주신 이야기를 듣고 배꼽 빠지게 웃었다. 할아버지는 별이 총총 내리는 여름밤에는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추운겨울에는 아랫목에 손자들을 앉혀 놓으시고 옛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다. 그 시절엔 정말 할아버지가 호랑이도 물리친 세상에서 제일 힘 센 분이셨다.

우리 조상들이 만들어 구전으로 내려온 이야기에는 어느 동화보다 환상적이고 흥미진진하고 힘이 있다. 거기다 해학과 풍자가 있어 언제 들어도 재미가 있다. 요즘은 교육적인 가치를 내세워 옛이야기의 원형을 훼손하여 나온 이야기들이 많다. 아이들에게 들려주다보면 이게 내가 어렸을 때 듣던 이야기와는 다른데 하는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다시 읽는 임석재 옛이야기' 전7권은 덧입혀지지 않은 우리 옛이야기의 원형들이다. 옛날 할머니 할아버지가 들려주던 이야기가 고스란히 그대로 들어있다. 임석재는 우리나라 구비문학의 대부라 할 수 있다. 살아생전 70여년을 우리 옛이야기를 수집하고 기록했다. 그가 남긴 '한국구전설화 전12권'은 우리나라 전국의 민담이 수록되어있는 옛이야기의 보고이다.

'다시 읽는 임석재 옛이야기' 전7권은 할아버지로부터 옛이야기를 듣고 자란 손녀 임혜령 동화작가가 원본이라 할 수 있는 '임석재 옛날이야기 전5권'을 다시 손을 봐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이 책은 차례차례 읽을 필요는 없다. 옛날 옛적 간날 갓적, 그럴 듯한 꾀를 내었지만, 콩쥐 팥쥐, 아들로 태어난 원수, 도둑나라를 친 새신랑, 맹사성과 공당 문답, 열두 삼천 벌 등의 표제는 있지만 내키는 대로 읽고 싶은 대로 찾아 읽으면 된다. 내가 아는 옛이야기와 얼마나 같은 지 비교해도 재밌다. 지방마다 이야기의 맛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먼 밖을 향한 시선을 이제는 안으로 돌려, 우리 문학의 뿌리인 옛이야기의 매력에 빠져들어 보자. 할머니 품에 안겨 듣던 옛날이야기, 사라져 버린 이야기 문화가 어느덧 새록새록 돋아 날것이다.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