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소설을 읽는 노인'을 비롯한 뛰어난 소설로 유명한 루이스 세풀베다는 동화작가로도 명성이 높다. 느림의 중요성을 깨달은 달팽이는 그의 세 번째 동화로 이탈리아에서만 50만 부가 판매된 베스트셀러이다.
작가는 '달팽이들이 왜 그렇게 느린걸까'라고 묻던 손자의 다소 엉뚱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야기를 쓰게 됐다고 밝힌다. 손자에게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는 친근한 말투로 전개되는 이 작품은 옛날이야기처럼 쉽게 읽히지만 그 속에 담긴 성찰과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야기 속 주인공인 달팽이의 삶은 평탄하지 못하다. 평소 남들이 하지 않는 이상한 질문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달팽이들이 그저 당연한 사실로 여기고 사는 '달팽이는 왜 느릴까'에 대해 심각한 고민에 빠지는가하면, 서로를 그저 '달팽이'라고 부르는 달팽이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이름을 갖고 싶어한다. 이런 고민을 다른 달팽이에게 털어놓으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는 소리를 들을 뿐이다. 결국 외톨이가 된 달팽이는 자신의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정든 고향 '민들레 나라'를 떠난다.

홀로 여행을 떠난 달팽이는 여행도중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인간들의 거주지에 이른다. 인간들은 아스팔트 도로를 확장하기 위해 동물이 사는 소중한 터전을 마구 파괴하는 중이다. '민들레 나라' 동료들이 심각한 위험에 처한 것을 알게 되자 하루빨리 이를 동료들에게 알려서 탈출할 결심을 한다. 달팽이는 과연 무사히 동료를 구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은 이처럼 고독한 여정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발견하는 어느 유별난 달팽이의 방황과 성장을 담은 이야기이다. 여정 속에서 달팽이는 느린 덕분에 길에서 마주치는 많은 것들을 하나하나 보고, 듣고, 기억하며 새로운 사실을 깨닫는다. 느림이 그가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과 만남을 통해 세풀베다는 독자들에게 자연스럽게 뭉클한 성찰과 깨달음을 선사한다.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