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책을 권하는 일을 하는 나는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가을에 읽으면 좋을 시 한편 없어요?" 그리고 "더위를 확 날려줄 으스스한 추리소설이나 공포소설 없나요?"라는 식이다. 책 읽을 계기를 찾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그런 접근도 좋은 방법이다. 지금은 여름, 무척 덥다. 뭘 하든 금방 귀찮아져 던져버리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그러고 보면 여름에는 뜨거운 열기를 식혀주는, 주위 공기가 좀 서늘하게 느껴지는 그런 책이 제격이긴 하다.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는 등골이 오싹해지고 싶은 목적으로 펼쳤던 책이다. 드라큘라가 등장하는 영화는 무서워서(?) 감히 볼 생각을 못하고, '원조 드라큘라'가 어떤 모습으로 어떤 활약을 펼치는지는 궁금해서였다.

브램 스토커는 병약한 유년을 보냈다. 침대에 누워 지내는 아들이 심심할까봐 어머니는 밤마다 옆에 앉아서 아일랜드의 온갖 전설과 귀신 이야기를 해주었다. 복지사이며 작가였던 어머니는 어린 아들에게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라 왜 그런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을까.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본다.

여름밤이면 모깃불 피운 마당 가 평상에 앉아 수박 먹으면서, 겨울밤이면 뜨끈한 아랫목에서 찐 고구마를 먹으면서 온갖 귀신과 도깨비 이야기를 들었다. 듣고 있을 때는 무서웠지만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무섭지 않았다. 나쁜 귀신은 결국 망했다. 착하고 현명한 주인공들이 이겼다. 그런 결말은 나를 늘 안심시켰다. 브램 스토커의 어머니는 침대에 누워있는 아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자유로워지기를, 그리고 착한 마음이 병든 육체를 건강하게 일으켜 세우길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어머니가 들려준 그 이야기들은 훗날 '드라큘라'의 자양분이 되어주었다. 브램 스토커는 왈라키아의 군주 블라드 드라큘 이야기를 접하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고 이 소설을 완성했다.

'드라큘라'는 드라큘라 백작을 반 헬싱 박사가 물리친다는 게 큰 틀이다. 문학가들은 이것을 과거·미신·이교도·초자연적인 존재를 현대·과학·기독교·이성이 이긴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빅토리아 시대 영국인들의 여성관과 성의식이다.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루시'는 흡혈귀에게 물린 후 관능적이고 유혹적으로 변한다. 그러자 남자들이 루시를 혐오하면서도 매혹 당한다. 흡혈귀, 어쩌면 그 존재는 억압되고 금지된 성적 욕망과 충동, 인간의 숨겨진 욕구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딱딱한 이야기를 떠나 소설은 아름답고, 슬프고, 쓸쓸하고, 으스스하다. 등장인물들의 일기와 편지로 이어지는 소설은 주변 풍경과 자신의 내면을 섬세하고 또 자세하게 묘사한다. 눈으로 보듯이, 옆에서 속삭이듯이. 드라큘라 백작의 모습은 문장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일부만 소개하면 이렇다. "그의 얼굴은 억센 독수리와 같은 인상을 주었다. 콧날이 날카롭고 콧마루가 오똑하며, 코끝이 삐죽하게 아래로 숙어져 있다.(중략) 입매는 딱딱하고 조금 잔인한 느낌을 주었고, 기이하게 날카로운 하얀 이가 입술 위로 비죽 나와 있는데, 그 입술이 유난히 붉어서 그의 나이에 걸맞지 않는 싱싱함을 느끼게 한다. 또, 귓바퀴는 파리하고 끝이 매우 뽀족하다." 훗날 숱한 영화와 만화에서 드라큘라가 등장할 걸 예측하고 쓴 대목 같다. 브램 스토커의 묘사를 넘어선 드라큘라는 아직 못 본 듯하다. 더위를 잊고 푹 빠져들었던 소설이다.

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