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트클럽·살롱 활동 록밴드
- 사이키델릭 구현 팀 늘며 변화
- 잇단 경연·축제로 대중 사로잡다
- 박정희 정권 '퇴폐 공연' 척결에
- 건전한 통기타 음악에 자리내줘

1969년 5월 17일 서울시민회관에서 열렸던 제1회 '플레이보이컵 쟁탈 보컬그룹경연대회'라는 긴 이름의 한국 최초의 록밴드 경연대회는 '록밴드'가 아니라 '보컬그룹'이라고 칭하고 있다. 1960년대 초반부터 솔로가수가 아니라 시스터즈, 브라더스와 같이 여러 명이 팀을 이루어 노래를 부르는 형태를 보컬그룹이라 불렀는데, 이 같은 현상은 록밴드도 마찬가지라는 고정관념에서 출발한 것이다. 한국의 록밴드 문화는 적어도 초창기에는 일반인에게 정확한 개념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1970년·1971년 플레이보이컵 쟁탈 보컬그룹경연대회 최우수상을 받은 밴드 '히식스'.

1970년 7월 10~12일 서울시민회관에서 열린 2회 대회부터는 그 양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1회 때의 참가팀들이 거의 미8군 무대 전속이었던데 반해 2회 참가팀은 총 11개 팀 가운데 미8군 무대 전문팀은 2개뿐이고 9개 팀은 일반 나이트클럽이나 살롱에서 활동하던 팀이었다. 1년 사이에 록밴드의 활동 무대가 미8군 무대를 벗어나 일반 무대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미군의 월남 파병으로 미8군 무대의 규모는 축소되었지만 1970년부터 호텔 나이트클럽과 음악살롱에서 고고 선풍이 불면서 록밴드의 수요가 늘어났던 것과 맞물린 현상이다.

두 번째의 변화는 드디어 사이키델릭 음악이 한국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던 파월 미군 장병들이 사이키델릭 음악을 들으며 전쟁의 불안을 달랬는데, 월남에 위문 공연을 갔던 음악인들이 사이키델릭 음악을 수입했다. 사이키델릭 음악은 음악, 조명, 춤 등이 일체를 이룬 것으로 이것을 제대로 구현하려면 음악 장비가 필요했다.

이런 변화가 반영되어 2회 대회부터 참가팀의 악기, 조명기구 등이 대폭 확충됐고 레퍼토리도 상당히 다양해졌다. 특별출연하는 신중현과 퀘스쳔스가 시가 50만 원 상당의 조명기구를 갖추었고 히식스는 자신이 출연했던 '코스모스' 살롱의 조명시설을 들고 나왔다.

	1970년 열린 2회 경연대회 광고. 여성 밴드가 많이 눈에 띄인다.

출연 팀은 키보이스, 히식스, 라스트찬스, 더 비즈, 굿타임즈, 디 엔드스, 셧건, 데블스, 레드버드(여성 5인조), 쉐그린, 투에이스 등 11팀이고 신중현과 퀘스천스, 엔젤시스터즈, 준시스터즈, 조영남, 김추자, 임희숙, 더 리듬즈(8명의 미국 여성 무용단) 등이 특별 출연했다. 2회 때에도 최우수상을 두고 키보이스와 히식스가 경합을 벌였는데, 3분의 2 득표 기준으로 3차 투표까지 했으나 판가름이 나지 않아 결국 과반수로 수정해 히식스가 수상하고 키보이스는 인기상을 받았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장발의 라스트찬스는 무대를 종횡무진 뛰면서 연주하는 폭발적인 매너로 은상을 수상했다. 데블스라는 팀은 해골이 그려진 복장을 입고 쇼걸을 시체로 분장시켜 관에 넣고 끌고 나와 섬뜩한 무대를 연출하여 구성상을 받았다.

	1971년 3회 경연대회 최우수상 트로피. 김형찬 제공

1971년 7월 16~19일 서울시민회관에서 열린 3회 때는 히식스, 키브러더즈, 트리퍼즈, 러시, 라스트챤스, 비즈, 코리언즈, 우드스톡스, 실버사이렌스, 제로즈, 업타이트 등 총 13개 밴드가 참가했다. 최우수상은 히식스, 우수상은 라스트챤스, 구성상은 미국인 보컬그룹 러시가 받았다. 특기할 만한 것은 이전까지 특별출연으로 참가하던 통기타 가수들의 정식무대인 포크부문이 신설되었다는 것이다. 포크부문 최고상은 이용복, 작사상은 뚜아에무아의 박인희(그리운 사람끼리), 작곡상은 투코리언즈의 김도향(벽오동), 가수상은 뚜아에무아, 인기상은 '동물농장'의 쉐그린, 신인상은 양희은이 수상했다. 이 대회는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3회로 마감한다. 1971년에는 플레이보이컵쟁탈 보컬그룹경연대회 외에도 다른 경연대회와 페스티벌이 한 달 간격으로 연이어 열리면서 한국 록음악의 전성기를 장식한다. 팝카니발 71(4월 3~5일), 71년 베스트 히트 플레이어(6월 25~27일), 히트히트히트쇼(7월 2~4일), 선데이서울컵쟁탈 보컬그룹경연대회(7월 16~19일, 이상 서울시민회관), 청평팝페스티벌(8월 17~22일, 청평 안전유원지), 실내우드스토크축제(8월 27~29일, 서울시민회관) 등이 그것이다.

이런 유례없는 록 음악의 전성기는 박정희가 1971년 4월 27일 7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후 조성된 유화 국면 속에서나 가능한 것이었다. 고삐를 조이기 시작한 박정희 정권이 1971년 8월부터 유흥업소의 음란 퇴폐 공연 단속을 시작하면서 나이트클럽과 음악살롱의 불법 철야 영업이 철퇴를 맞는다. 업소들이 휴업하거나 규모를 줄이면서 이곳에 출연하던 록밴드들은 일자리를 잃고 해체되거나 지방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한껏 솟아올랐던 록 음악의 위세가 크게 꺾였고 그 틈을 타서 록 음악에 비해 비교적 건전하고 조용한 통기타 음악이 기회를 얻게 된다. 이때부터 라나에로스포, 은희, 이용복, 양희은 등이 서서히 부상하면서 통기타 음악의 전성기가 뒤를 잇게 된다.

대중음악저술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