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대 말 수족관 활용해
- 전국 최초 활어회 선보인 고장

- 전어와 40년 함께한 어민들
- 좀다른 방식으로 가을별미 즐겨

- 잔뼈 씹는 맛 일품인 대가리회
- 곱게 다져 식감 좋은 다짐회
- 고소한 육즙 넘치는 넙데기회

전어만큼 사람들에게 다양하게 스토리텔링된 생선이 또 있을까?

	먹음직한 전어대가리다짐회를 한 젓가락 집어올렸다. 부산 낙동강 유역 사람들이 전어를 즐기던 특유의 방식 가운데 하나다. 촬영 협조=부산 강서구 명지시장 부광횟집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는 얘기부터 '전어 대가리에 참깨가 서 말' '봄도다리, 가을전어' 등 전어의 일미를 추켜세우는 속담이 즐비하다.

게다가 워낙 맛이 좋아 '신분의 귀천 없이 모두 좋아해 돈(錢)을 생각하지 않고 먹는다(임원경제지 林園經濟志)'고 해서 '전어(錢魚)', '화살(箭)처럼 빠르게 헤엄치는 물고기(자산어보 玆山魚譜)'라 하여 '전어(箭魚)'라 불리는 등 예부터 전어에 관한 속담과 일화는 많이 전래돼 왔다.

오래전부터 전어는 싸고 맛있으면서도 귀하게 대접받은 생선이었다. 그만큼 서민에게 친숙하고 사랑도 듬뿍 받는 어종이었던 것. 생선회로도 좋지만 석쇠에 소금 솔솔 뿌려 자글자글 구운 전어구이나 몸통에 칼집 넣고 양념 넉넉하게 발라 조린 전어조림도 그저 그만이었다.

이처럼 다양한 요리로 변주하며 가을을 알리는 전어는, 대표적인 가을 생선이다. 여름이 한풀 꺾일 때쯤 남해의 연안으로 올라와, 가을바람이 소슬해지면 맛이 들기 시작하여, 찬바람이 들 때쯤 구수하면서도 진한 맛으로 '절정의 풍미'를 선사하는 것이다.

■전어활어회 처음 선보인 명지시장

	전어넙데기회

전어는 남해 전 지역에서 고루 어획되는데 사천의 팔포, 하동의 술상, 보성의 율포 등이 전어 산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부산도 전어에 대해서는 꽤나 의미 있는 지역이다. 낙동강을 중심으로 명지, 가덕도, 다대포 앞바다의 기수 지역에서 다량으로 전어를 잡아 올리거니와, 활어 상태의 전어회를 전국 최초로 상업화한 곳 또한 부산이기 때문이다.

강서구 명지동의 '명지시장' 관계자들은 "명지시장은 전국 최초로 전어를 활어 상태로 공수하여, 수족관에 살려두었다가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방식의 영업을 197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원래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전어는 선어 상태에서 먹던 생선이었다. 워낙 성질이 급해 활어 상태로 보존하기가 쉽지 않아, 선어 상태의 전어회를 뼈째 먹거나 새콤달콤한 회무침으로 먹곤 했다. 당시 적은 돈에도 한 접시 가득 담겨 나오던 전어회는 맛있으면서도 값싸고 양 많은 '참 착한 생선'이었다.

전어는 산란철 기수 지역의 개흙을 먹고 사는데, 가을이 깊어 수온이 떨어지면 개흙을 다 뱉어낸다. 이 때문에 낙동강권에서는 그때쯤이면 전어회를 장만해 먹을 때 비늘만 치고 내장 채 썰어서 먹는다. 그래야 '통 마리 회'의 진수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부터 낙동강 하류는 바다가 합류하는 지역이라, 철마다 맛있는 생선이 지천으로 넘쳐났다. 특히 가을이면 전어로 파시를 이룰 정도여서 낙동강 하류의 포구는 '전어의 고향'이라 지칭할 정도였다.

이 낙동강 하류의 포구에 자리 잡은 시장 중 하나가 명지시장이다. 때문에 40여 년 전 가덕도와 명지 앞바다 일대에서 잡히는 전어를, 전국 최초로 활어회로 선보인 곳 또한 명지시장이라는 인연이 생긴 것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해마다 '가을 전어축제'를 열고 있기도 하다.

■전어를 통째 즐기는 색다른 방법

	전어대가리다짐회

명지 전어는 살이 두툼하고 탄탄해 기존에 흔히 먹는 전어회(전어뼈회, 전어포회) 말고도, 다양한 방법으로 통 마리 전어회를 즐겨 먹을 수 있다. 깨가 서 말 들었다는 대가리를 쫑쫑 쪼아서 콩된장에 푹 찍어 먹는 '전어대가리회'를 비롯해, 전어 통 마리를 두세 토막으로 넙적넙적 큼지막하게 썰어 먹는 '전어 넙데기회', 전어 대가리를 칼로 곱게 다져 초장에 비벼 먹는 '전어다짐회' 등이 그것으로, 낙동강권 사람들이 전어의 탄탄한 식감과 육즙의 풍성함을 즐기기 위해 선호하는 방식의 전어회이다.

명지시장에서 지인들과 앉아 전어를 먹는다. "낙동강 전어는 '대가리에 깨가 서 말'이라 대가리도 안 버리고 회로 먹었습니다. 주둥이와 아가미를 떼고 칼집 몇 번 쪼아가꼬 된장에 찍어 먹었지요." 부광횟집 최청규 대표의 말이다. 그 말을 받아 지인들이 한 마디씩 거든다. "명지 신포 뱃머리에서 낚시로 전어를 많이 잡았는데, 낚시하다 촐촐해지모 몸통은 회 뜨고, 회 삐지(썰어) 묵고 난 대가리는 꾸워서 묵었지예." "주변 갈대를 꺾어 불을 피운 뒤, 갈대 밑동으로 전어 대가리를 꿰어서 꾸워 먹었다 아입니까."

우선 '전어대가리회'를 한 점 집는다. 전어 눈이며, 아가미 부분이 선명하다. 처음 대하는 사람에게는 호불호가 뚜렷하겠다. 한 점 크게 입에 넣으니 입안 가득 전어회로 웅숭깊다. 도톰한 등살과 함께 꾹꾹 씹으니, 씹을수록 고소한 육즙이 입안에서 흘러넘친다. 전어뱃살과도 함께 한입 먹는다. 꼬독꼬독 잔뼈가 씹히는 것이 대단하다. 구수함도 끝 갈 데 없고 식감도 유쾌하기 짝이 없다.

일본식 다짐회인 '다다키'를 연상케 하는 '대가리다짐회'도 한 입 떼어 먹어본다. 전어 대가리를 살점 다지듯 곱게 다져서 경단처럼 뭉쳤다. 배 고팠던 시절 명지에서 자주 먹던 방식으로, 적당한 비린내가 나면서 아작아작한 식감이 특징이다. 마치 마른 멸치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 맛이 나는데, 초장과 어우러지면서 고소하고 달콤한 맛이 입에서 내내 돈다.

■낙동강유역 식문화 진지한 조명을

	전어 대가리회

소주 한 잔에 '전어 넙데기회'도 한 점 먹는다. 넙데기회는 회 맛을 잘 아는 명지의 전어회꾼들이 씹는 맛과 육즙을 한층 더하기 위해 장만해 먹는 방법이다. 넙데기회를 입에 넣으니 탄실탄실 탄력 있는 육질과 연한 뼈가 절묘하게 혀에 착착 감긴다.

마늘과 땡초를 듬뿍 넣은 콩된장 양념 덕분에 온 입 가득 구수한 맛 또한 넘쳐난다. 넙데기회는 한 점만으로도 한 입 가득이라 씹는 맛이 일품이다. 씹을 때마다 육즙이 풍부하게 나와, 전어회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큰 즐거움을 준다.

명지 전어는 전어젓갈로 담근 묵은지로 쌈을 싸서 먹으면, 이 또한 참으로 잘 어울리는 맛을 선사한다. 우선 앞접시에 전어젓갈로 담은 묵은 지 한 조각을 깔고 전어회를 몇 점을 올린다. 그 위에 참기름을 듬뿍 넣은 콩된장 양념을 올리고, 햅쌀로 지은 밥을 조금 떼어 쌈을 싼다. 그리고 볼이 터져라 푸짐하게 한입 가~득 싸먹는 것이다.

우선 기분 좋게 은은한 묵은지 군둥내가 나고, 그 뒤로 고소한 전어회의 육즙과 햅쌀밥의 담백함이 어우러져 입안을 온통 희롱하면서 새로운 회 맛의 세계를 만들어 낸다.

이처럼 '명지식 전어회'는 어떻게 보면 원시적이고 불편한 섭취 방법이지만, 그만큼 자연의 맛을 구현하고 식재료 본연의 맛을 추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식재료들이 홍수나 가뭄 등 자연재해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간 낙동강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을 다독여준 것이다.

가을바람이 소슬하게 분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전어의 맛도 더욱 깊어질 것이다. 이 가을~! 풍성한 전어회를 맛보며, 낙동강 사람들의 먹거리 문화 또한 한 번쯤 곱씹어 보는 것도 괜찮겠다.

동의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