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구 남포동
- 50개 점포에 수백개 코너 모인 양곱창 골목
- 오래된 집은 50년 훌쩍 넘어

- 배에서 내린 선원들 고되게 돈 벌어
- 이 동네 작부 집서 홀랑 탕진할 만큼 흥청대던 골목
- 이제 양곱창집만 소복이 남아

부산을 대표하는 육고기 음식 중 '양곱창구이'가 있다.

남포동 양곱창 골목의 한 식당에서 양곱창 소금구이가 맛있게 익어간다.

소 내장 중 위장과 창자 부위를 연탄불 석쇠에 구워 먹는 음식이다. 소의 첫 번째 위장 '양'과 작은창자인 '곱창'을 붙여 '양곱창'이라 한다. 부산은 이 양곱창이 전국에서 제일 맛있고, 국내 최대의 집단화된 양곱창 골목과 전문식당을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맛객'들이 양곱창을 즐겨 먹는 곳이다. 전국 최대의 양곱창 소비지이기도 하다. 그렇게 본다면 부산은 양곱창의 본향쯤 되겠다.

하여 맛있는 양곱창을 먹으려면 필히 부산에 와야 한다. 그렇다면 부산이 왜 유명한 양곱창의 도시가 됐을까? 그 첫째는 재료의 공급과 소비에 있다. 전국에서 최고로 신선한 양질의 '양곱창' 재료는, 부산으로 먼저 공수되기 때문이다. 부산이 전국 최대 규모의 양곱창 소비지이기에 그렇다.

잘 익은 양곱창 한 젓가락.

'남포동 양곱창 골목.' 부산 중구의 이곳은 '양곱창집'이 집단화되어있는 곳이다. 자갈치농협 뒷골목을 시작으로 자갈치로59번길 전체의 350여m, 세 블록에 걸친 골목 50여 집이 집단을 이루고 있는데, 점포 안에서 개별로 영업하는 '코너'까지 합치면 200~300여 집은 족히 되고도 남는다. 양곱창 '단일 품목' 식당가로는 전국에서 규모가 가장 클 것이다.

오래된 곳은 1959년 영업을 시작한 백화양곱창으로 50년이 훌쩍 넘었다. 주변 많은 곳도 40~50여 년은 족히 됐고, 최근 몇 년 사이에도 늘어나는 추세다. 방송을 탄 몇 곳은 저녁 무렵부터 줄을 서기 시작하여, 꽤 오래 기다려야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정도다.

■지친 선원들 허기 달래준 음식

양념구이를 조리한 불판 위에 밥을 볶고 있는 모습.

원래 자갈치 뒷골목은 선원들이 배에서 내려 술로 목을 축이던, 맥줏집과 작부 집으로 흥청대던 곳이었다. 선원 이길수 씨에 따르면 "배에서 내릴 때 현금을 마대 자루에 담고서 내리곤 했는데, 많은 선원이 지금의 양곱창 골목에 있던 작부 집에서 돈을 탕진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1980년대 전후 수산업 경기가 안 좋아지자, 이 골목은 양곱창집으로 하나둘 업종을 변경해 오늘에 이르렀다는 설명이다. 주로 선원과 관공서 공무원이 당시의 주요한 고객이었다고.

특히 이곳은 망망대해를 돌아들던 선원들이 배에서 내려 제일 먼저 들르던 곳이었다. 양곱창이 싸고 맛있는 동물 단백질이었기에 먼저 이곳에서 짠물에 절은 목젖을 씻었다. 인근에 관공서가 산재해 공무원들도 단골이었단다. 법원과 시청 공무원들이 술 한 잔에 양곱창 한 점으로 하루의 일상을 마무리했던 것.

1990년대 들어 엔고(円高) 시대가 무르익자 일본인들의 부산 방문이 잦아졌다. 이른바 '기생관광'이라는 음성적 관광도 성행하던 때다. 이때 일본인들이 빠지지 않고 들르던 곳이 양곱창집이었다. 일명 '호르몬야끼'라 하여 남성에게 좋은 음식이라는 속설 때문이었다. 이 속설의 시작은 일본 관동대지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많은 일본인이 굶어 죽었는데, 조선 사람들은 통통하니 살이 올랐다는 목격담이 돌았다. 전후 일본 식품학자들이 연구해보니, 당시 일본인은 먹지 않았던 양곱창에 우수한 영양 성분이 다양하게 함유돼 있었다고 한다. 양곱창은 재일동포들이 즐겨 먹던 음식이다.

그 뒤 일본의 규슈, 히로시마를 중심으로 일본인도 양곱창 요리를 보양식으로 널리 먹게 되었다고 한다. 하여 싸고 양 많고, 양질의 영양소를 함유한 부산의 양곱창을 먹는 것이 일본인의 부산 방문 필수코스가 된 것이다. 2000년대 접어들어 대중화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의 앙곱창골목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고, 남녀노소 즐겨 먹는 부산의 대표 음식 중 하나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치지직 치지직' 풍미의 정점

기름기가 잘잘 흐르는 볶음밥.

입소문 난 양곱창집에 들어선다. 사람들로 꽉 찬 사이를 비집고 자리를 마련한다. 환풍기가 쉴 새 없이 돌지만, 자욱한 연기는 빠질 줄 모른다. 양곱창 한 접시 시킨다. 특양, 양, 곱창, 대창, 염통 등이 한 접시로 나온다. 주로 소금구이는 마늘양념소스에 버무려 석쇠에 굽고, 양념구이는 고추장양념을 하여 돌판에 굽는다. 우선 소금구이 한 접시를 시킨다.

연탄불 위로 푸른 불꽃이 일렁인다.석쇠가 빨갛게 달아오를 때쯤, 양과 곱창을 차례로 얹는다. "치지직 치지직." 양곱창 익는 소리가 식욕을 자극한다. 먼저 불에 살짝 익힌 '특양'을 한 점 소스에 찍어 먹는다. 조개관자 씹듯 부드러우면서도 아삭아삭한 맛이 절정이다. 풍미까지 좋아 그윽하다. '양'을 먹을 때는 주로 위장의 두툼한 앞부분인 '양깃머리'를 먹는데, 쫄깃쫄깃 쫀득쫀득한 식감이 일품이다.

소스가 괜찮다 싶어 자세히 보니 간장에 마늘 다진 것 듬뿍 넣고 설탕과 식초, 후추에 좋은 참기름을 섞었다. 양곱창에 잘 어울리는 소스다. '곱창'은 안에 '곱'이 있어 제대로 구우면 쫄깃하면서도 들큰한 맛을 낸다. 대창을 입에 넣으니, 기름기가 입안에서 매끌매끌 돈다. 질릴 정도로 고소하다. 연탄불에 불길이 솟으면 필시 대창을 굽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염통은 쫀득하면서 특유의 감칠맛이 돈다. 옆의 샐러드를 한 입 집어 먹는다. 상추와 양파 등을 마늘 소스에 끼얹었는데, 기름기 다스리는 데는 그저 그만이다.

양곱창과 밥, 양파 등을 넣고 볶아주면 볶음밥이 된다. 이곳의 30년 단골 김문철 씨는 "먹고 남은 양곱창은 일본 요리 타다키(たたき)처럼 잘게 다져 볶음밥으로 먹었다. 소금구이의 고기가 남으면 볶음밥으로 먹고, 양념구이는 국물에 우동사리를 넣어 비벼 먹었다"고 전한다. 지금은 남은 양곱창을 그대로 볶아 김에 싸먹는 것을 별미로 친다.

볶음밥 한 숟가락 맛본다. 씹을수록 고소하고 깊은 맛이 참 기껍다. 양곱창이 기분 좋게 씹히고, 양념 잘 밴 밥알도 흔쾌하다. 은근한 돌판에 눌어붙은 누룽지는 바싹한 식감에 고소함까지 더해져 입가심으로 너무 좋다. 곁들여 떠먹는 물김치는 새콤하고 아삭하니 입 가시기에 참 좋다.

■부산 향토음식이라 하기엔…

이렇게 전국에서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부산의 양곱창. 그러나 아직은 양곱창이 부산의 향토음식이라 말하기가 저어된다. 필자가 정의하는 향토음식은 '그 지역 사람들'이 '그 지역에 나는 음식재료'로 조리해 '그 지역의 환경에 맞게 오래도록 길든 입맛'으로 먹되, '지역사회 전체가 향토음식으로 인정'하는 '자연발생적인 음식'을 뜻한다.

그렇게 따지자면 양곱창은 부산의 식재료도 아니고, 부산 지역에서 오랜 세월 길들여진 맛이라 하기도 어려우며, 지역 전체가 즐겨 먹는 음식으로 보기도 힘들다. 하여 진정한 부산의 향토음식으로 부산시민에게 더 큰 사랑을 받으려면 일본 특유의 전골, 튀김, 조림, 샐러드 요리처럼 부산의 성정을 담뿍 품은 다양한 메뉴와 레시피 개발이 선행되어야 하겠다.

동의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