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권의 인식·블랙리스트에 분개
- 춤꾼들 90분 간 몸짓으로 저항

꾹꾹 눌러 담았던 분노와 한탄이 온몸으로 뿜어져 나왔다. 정부의 정책을 풍자하고 촛불을 들었단 이유로, 세월호에 묻힌 아이들을 위해 춤췄단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오른 예술가들이 정부에 저항하는 의지를 활활 불태운 90분이었다.

	지난 12일 서면 쥬디스태화 거리에서 열린 부산민예총 '먼저 춤 궐기! 행렬 넘어 행렬' 공연에서 춤꾼 하연화 씨가 '평화맞이굿'을 춤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진가 장영식 제공

지난 12일 오후 5시45분 부산진구 서면 쥬디스태화 앞에서 (사)부산민예총 춤위원회의 '먼저 춤 궐기! 행렬 넘어 행렬' 거리공연이 열렸다.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민중총궐기대회 개최에 앞서 부산의 내로라하는 춤꾼들이 저항의 몸짓을 펼친 자리였다. 부산민예총 춤위원회는 원래 올해 정기공연을 '평화&이야기'를 주제로 해운대 폐선부지에서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 말살 정책의 실체가 드러나자 이를 묵과할 수 없어 장소와 내용을 바꿨다.

현장 분위기는 뜨거웠다. 공연 1시간 전부터 공연장을 에워싼 이들이 쥬디스태화 사거리를 가득 메웠고, 시민들은 '박근혜 하야하라'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춤꾼들의 몸짓에 환호를 보냈다. 하연화의 '평화맞이굿'을 시작으로 김유진·류영주의 '버부리', 김경미의 '입춤', 서소명 백지현 김윤지 조예라의 'freedom', 정기정의 '회귀', 강미선의 '지전춤', 이상운의 '봉기', 정승천의 '보리문디춤'. 모든 작품은 족쇄에 갇혀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한 억울함과 저항이 처절히 전해졌다. 마지막 순서로 부산민예총 풍물굿위원회의 풍물굿은 변화를 끌어내겠다는 예술인과 시민의 의지가 합쳐져 서면 일대를 흔들었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전 국민이 분노했다. 특히 예술인의 분노와 상실감은 더하다. 박근혜 정부가 '문화=산업'이란 인식 아래 문화예술을 돈으로 사려 한다는 의심이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의 진상 규명을 요구한 문화연대와 한국작가회의,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등이 시국선언을 발표했고, 그간 잘 나서지 않던 한국춤비평가협회까지 시국선언에 가세한 상황이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먼저 춤 궐기! 행렬 넘어 행렬' 현장에서도 예술가들의 날 선 목소리가 가득했다. 부산민예총 관계자는 "박근혜정부가 '문화융성' '창조경제'를 내세워 문화를 자본의 논리로 지배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예술이 죽었다. 문화를 돈으로 환산하는 순간 예술은 말살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부산작가회의 한 회원도 "현 정부는 자기들 방향과 맞지 않으면 블랙리스트에 올려놓고 예술인을 탄압했다. 문화를 이렇게 대하는 정권은 바뀌어야 마땅하다"고 한탄했다. 또 다른 예술인은 "정부가 문화융성을 한다며 엄청난 예산을 투입했는데 그것이 최순실, 차은택 같은 비선실세의 배를 불리는 도구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마당에 뭘 더 기대하겠냐"고 반문했다.

부산민예총 이청산 회장은 현장에서 '여러분의 함성으로, 박근혜는 하야하라'라는 시를 낭송했다.예술의 본질을 부정한 현 정권에 대한 분노를 담은 시였다. 김현주 기자 kimhju@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