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시대 사람들도 미역을 즐겨먹었다
- '곽'이라 불린 미역은 고려의 특산품이자 수출품이기도 했다

- 조선시대 미역은 '세원'이었다
- 진상된 미역을 비축했다가 관리에게 지급하거나 백성 구휼에 쓰기도 했다

- 바다에 직접 뛰어들어 자연산을 채취해야 했던 산지 백성의 노동은 혹독했고
- 중간 관리의 농간 탓에 과한 세금에도 시달려야 했다

1740년(영조 16) 간행된 '동래부지(東萊府誌)' 토산조(土産條)에는 곽(藿)이라는 이름을 가진 토산물이 등장한다. 이것이 바로 미역이다. 지금도 부산, 그 중에서도 기장(機張)은 미역으로 꽤나 유명하지만 과거에도 요즘과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미역은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이 가까이해온 해초(海草)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한치윤(韓致奫, 1765~1814)이 쓴 '해동역사(海東繹史)'를 보면 "신라의 깊은 바다에서 해초와 다시마가 난다"고 기록되어 있어서 신라 시대에도 우리 민족이 미역을 먹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우리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접하는 해초도 미역이다. 아기가 태어나면 순산에 감사하고 아기의 장수를 비는 뜻에서 쌀밥과 미역국으로 삼신상을 차렸다. 그리고 생후 삼칠일이 되면 아기 머리맡에 쌀밥과 미역국으로 다시 삼신상을 차려서 아기의 건강에 감사하고 백일과 돌에도 미역국과 쌀밥을 놓고 상을 차렸다.

■고려인이 즐겨 먹었던 미역

바다에서 채취한 미역을 말리는 어민들. 국제신문 DB

고려 시대 사람들은 미역을 즐겨 먹었다. '고려사(高麗史)' 1058년(문종 12) 기사에는 "곽전(藿田)을 하사하였다"는 내용이 보인다. 당시 고려에는 미역 채취가 가능한 곽전이 운영되고 있었던 것이다. 1123년(고려 인종 1)에 송나라 사람 서긍(徐兢)은 사신으로 고려를 다녀갔다. 이후 이때의 경험을 적어 '고려도경(高麗圖經)'이라는 책을 남겼는데, 그는 여기에서 "미역은 (고려에서) 귀천이 없이 널리 즐겨 먹고 있다. 그 맛이 짜고 비린내가 나지만 오랫동안 먹으면 그저 먹을 만하다"고 적었다. 고려인들은 귀천에 관계없이 미역을 즐겨 먹었던 것이다. '고려사(高麗史)' 1310년(충선왕 2) 기사에는 "해채(海菜)를 원나라 황태후에 바쳤다"는 기록도 있다. 미역은 고려의 특산품이자 수출품이기도 했던 것이다.

미역을 즐겨 먹었던 고려인들은 선물로 주고받기도 했다. 이색(李穡, 1328∼1396)이 남긴 시(詩)에서 이러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미역을 해마다 보내 주어/산재에서 날마다 먹으니/처음엔 흐린 눈이 맑아짐을 알았고/점차로 시상이 윤택해진 게 기뻐라/외딴 섬에 봄빛은 멀기만 하고/거센 바람에 파도는 드높아서/미역 따기란 쉬운 일이 아닐 테라/조용히 씹노라니 맘이 아득해지네'.

이색은 강릉에 사는 최상(崔相)이라고 불리는 자로부터 미역을 선물 받고 사례로 이 시를 썼는데, 미역을 먹으니 눈이 맑아지고 시상이 윤택해졌다며 미역을 따서 보내준 데 대해 감사를 표했다.

■고달팠던 미역진상

미역을 손질하는 아낙네.

조선 시대에 미역은 국가의 세원(稅源)이기도 했다. 조정은 산지에서 진상(進上)한 미역을 비축해 두었다가 관리들에게 지급하기도 했고, 기근에 허덕이던 민(民)을 구제하는 데도 사용했다. 1733년(영조 9)에 기근(饑饉)이 들자 영조(英祖)는 미역 600동(同)을 진휼소(賑恤所)에 내려주었다. 미역을 넣고 죽(粥)을 쑤어 기민을 구제하도록 한 것이다. 미역을 넣고 죽을 쑤면 적은 양의 곡식으로 더 많은 기민을 구제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영양가도 높일 수 있었다.

국가는 이처럼 미역을 긴요하게 사용했지만, 산지의 민들은 미역을 진상하느라 여간 곤욕을 치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기장은 바로 그런 고을 중 하나였다. 요즘처럼 양식으로 미역을 생산하지 않고 바다에 직접 뛰어들어 건져 올려야만 했던 시절에 미역 채취는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색도 '거센 바람에 파도는 드높아서/미역 따기란 쉬운 일이 아닐 테라'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더 괴로웠던 일은 중간에서 관리들이 농간을 부리는 것이었다. 1906년 5월에 기장군에 사는 김종섭(金鍾燮), 구병윤(具炳潤) 등은 "본인이 살고 있는 땅은 해변의 구석으로서, 미역을 채취하여 생계를 삼는 백성들입니다. 옛날의 세전(稅錢)이 원래의 본정(本程)에 의하여 매년 탁지부(度支部)에 상납하였는데, 금년에 이르러 장정에는 본래 없는 곽도전(藿賭錢)을 거두어 들인다"며 청원서를 제출했다. 이에 따르면 곽도전을 핑계로 협잡배들은 부(府)와 군(郡)의 훈령을 지니고 돈 3000냥을 경리원(經理院)에 상납한다고 가난한 백성들을 위협하면서 하루에도 세 번씩 독촉을 했다고 한다.

이에 김종섭 등은 "대저 농상업(農商業) 간에 한 물건에 두 번 세를 거두는 이치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저희들 시골에 사는 백성이 감히 청원하오니 특별히 해당 도(道)의 부와 군에 신칙(申飭)하시어 여러 번 과세하는 것을 혁파하고 바닷가의 가난한 백성으로 하여금 다시는 억울하여 호소하는 일이 없게 하여주시기 천만 바란다"며 관에 청원서를 제출했던 것이다. 관은 해당 관원에게 함부로 세금을 거두는 폐단을 자세히 조사하여 금단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하지만 이후로도 시정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들은 청원서를 계속 관에 제출하고 있었다. 기장민들은 미역 채취라는 고된 노동과 거듭 부과된 세금에 신음하는 고달픈 삶을 이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산후선약(産後仙藥)

미역국

미역은 잘 알려져 있듯이 출산 뒤에 좋은 먹거리이다. 그래서 산후선약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와 관련한 기록은 여러 문헌에서 확인된다.

성대중(成大中, 1732~1809)의 '청성잡기(靑城雜記)'에는 산후에 미역을 먹는 유래가 나와 있다. 성대중은 '어미 고래는 새끼를 낳을 때가 되면 반드시 미역이 많은 바다를 찾아 실컷 배를 채우는데, 먹이를 탐하여 비좁은 물길로 들어갔다가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는 경우도 많다. 이것이 바다의 큰 물고기가 주는 교훈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산모가 미역의 도움을 받는 것 역시 고래에게서 얻은 교훈이다'고 기록했다. 출산 후 미역을 먹는 것이 고래의 출산으로부터 얻은 교훈 때문이라는 이야기이다.

비슷한 이야기가 이규경(李圭景, 1788~1856)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속 '산부계곽변증설(産婦鷄藿辨證說)'에도 전한다. 어떤 사람이 바다에서 헤엄치다가 막 새끼를 낳은 고래에게 먹혀 뱃속에 들어갔다. 고래 뱃속에는 미역이 가득 붙어 있었는데, 장부(臟腑)의 악혈이 모두 물로 변해 있었다. 이에, 고래 뱃속에서 겨우 빠져나온 사람은 미역이 산후조리에 효험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세상에 알렸다는 이야기이다. 한마디로 미역이 몸속의 악혈을 제거하므로 산후 회복에 좋다는 것이다. 정약전(丁若銓, 1758~1816)도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 '임산부의 여러 가지 병을 고치는 데 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미역의 효능을 설명했다.

익히 알려진 대로 미역은 알칼리성 식품으로 요오드, 칼슘 등 무기질과 비타민이 풍부해 산후 몸조리에 효능이 있다. 열량은 적고 섬유질이 풍부해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다. 이러한 미역의 약효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져 허준(許浚, 1539∼1615)의 '동의보감(東醫寶鑑)'에도 '열이 나면서 답답한 것을 없애고 기(氣)가 뭉친 것을 치료하며 소변을 잘 나가게 한다'고 소개되어 있다.

최근 해운대, 송정, 기장 일원에는 미역국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이 생겨나 성업 중이다. 전복, 가자미 등 해산물을 넣고 끓여 낸 미역국 맛이 가히 일품이다. 끓여도 쉽게 풀어지지 않고 꼬들꼬들함을 유지하는 기장 미역 특유의 식감도 같이 느낄 수 있어 더욱 좋다. 점점 기온이 낮아진다. 오늘은 뜨끈한 미역국 한 그릇으로 허한 속을 달래 보아야겠다.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