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직시켜 준다는 꾀임에 속은 두 소녀

- 상하이 위안소로 끌려가 지옥 같은 삶

- 수십년 가슴에 묻어둔 일제만행 고발

정월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양지바른 담벼락 앞에 마을 처녀들이 웅성웅성 서 있는 게 보였다. 어떤 아저씨가 내 또래 여자들을 불러 놓고 설명을 하고 있었다. 의령 평촌을 돌아다니면서 일본 공장이나 병원에서 일할 처녀들을 구한다는 최 씨 아저씨라고 하였다. 그 속에는 꽃님이도 있었다. (…) 나는 이 말에 솔깃해 어머니를 설득해 일본으로 가기로 했다.

	부산정신문제대책협의회가 일본군 위안부를 잊지 말자는 취지에서 지난해 3월 부산진구 초읍동 어린이대공원에 세운 소녀상. 국제신문DB

어머니는 떠나는 나를 어린아이처럼 보듬어 안았다.

"우리 순덕이, 이쁜 순덕이, 몸 성히 잘 다녀오너라. 돌아오면 좋은 신랑감 구해서 족두리 쓰고 시집보내 줄게."

다음 날 이른 새벽, 나와 꽃님이는 첫 차를 타고 의령버스 정류장으로 갔다.(본문 45~49쪽)


이 책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지옥 같은 삶을 산 두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순덕이와 수많은 소녀들은 공장에 취직하여 돈을 벌고, 혹은 병원에 취직하여 간호사가 되어 오겠다며 일본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부산으로 갔다. 열심히 일해 돈을 벌어 어려운 집안을 일으키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오순도순 살 것을 꿈꾸며 그렇게 떠났다. 그러나 이들은 속았던 것이다. 이들이 간 곳은 공장도 아니고 병원도 아니었다. 나가사키에 도착하여 또 커다란 배를 타고 어디론가 끌려갔다. 그 곳은 전쟁이 한창인 중국 상하이였다.

이들은 밤마다 악몽을 꾸고 병을 앓고 일본군의 위안부로 점점 빛을 잃어갔다. 지옥 같은 삶을 죽지 못해 이어갔다. 꽃님이는 위안소를 뛰쳐나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전쟁은 계속되었고 고향으로 돌아갈 길은 점점 멀어져만 갔다. 다행하게도 순덕이는 누이동생을 닮았다고 아껴주던 일본 장교에게 사정하여 귀향증을 손에 넣는다. 의령과 산청에서 함께 온 언니와 친구 것까지 받아왔다. 순덕이는 남경, 봉천을 지나고 압록강을 건너 신의주로 왔다. 평양까지 와 기차를 타고 부산을 거쳐 고향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들은 상하이에서의 슬픈 날들에 대해 죽을 때까지 입을 꾹 다물기로 약속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이들은 이제 호호 할머니가 되고 말았다. 이들은 가슴에 한을 묻고 하나둘 사라져 갔다. 그러나 김학순 할머니가 가슴이 묻어 두었던 일본의 만행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나는 일본군 위안부였습니다."

그 뒤 문옥주, 김복선 등 여러 할머니의 증언이 잇달았다. 일제 강점기 때 우리나라의 어린 소녀들이 20여만 명이나 끌려가 성노예가 되었던 것이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때는 필리핀, 미얀마, 사이판, 싱가포르, 오키나와…. 일본군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위안소를 운영했다고 한다.

부산, 경남에서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어린 소녀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으며 영도는 일본군 위안소가 있던 지역이다. 일본군의 성노예로 인생 전체를 유린당한 이들에게 가해자는 꿈쩍도 않고 있지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는 일이 물결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부산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역사·문학관' 건립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그러하다. 우리의 염원이 다른 곳에 이용당하지 않길 바라며, 하늘나라에 먼저 간 할머니들이 모든 걸 잊고 열일곱 꽃다운 나이가 되어 훨훨 춤추는 그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