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세속과의 단절, 혹은 초월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불교는 초월을 지향한다. 그러나 불교는 복잡다기한 삶의 현장을 떠나지 않는다. 다만 그 삶의 현장에 묶이거나 지배되지 않는다. 이것이 불교적 초월이다. 그러니까 단절하는 일 없이 초월한다.

자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것은 그래서 유일한 실천의 길이 된다. 여기 '서유기' 얘기가 있다.

손오공은 여래의 길을 걷는 서천 여행을 시작하기 전까지 자아집착의 화신이었다. 그 집착은 하늘 높이 치솟아 나중에는 옥황상제의 자리까지 요구하게 된다. 최고의 천신들도 그 집착을 막을 길이 없었다. 그 때 석가여래가 나타나 손오공에게 시합을 제안한다. 만약 손오공이 여래의 손바닥을 벗어날 수 있다면 옥황상제의 자리를 내어주겠다는 것이었다.

손오공은 자신만만하게 구름을 타고 여래의 손바닥 위를 날아가 다섯 개의 기둥 같은 산을 만난다. 손오공은 이곳이 세상의 끝이라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 중 가운데의 산에 '손오공 어르신이 이곳에 와서 노닐다'는 표시를 하고 오줌으로 증거까지 남긴다. 손오공이 돌아와 여래에게 큰소리친다. "내가 세상의 끝에 다녀왔노라!" 여래가 말한다. "이거 말이냐?" 손오공이 보니 여래의 가운데 손가락에 자기가 남긴 글씨가 있고, 원숭이 오줌냄새가 진동했다. 손오공이 놀라 달아나자 여래가 손바닥을 뒤집어 그를 가두어버린다.

그때 여래의 손이 산으로 변하여 오행산이 된다. 손오공은 이 산에 갇혀 호법신들이 가져다주는 구리 녹인 물로 갈증을 풀고, 쇠구슬로 허기를 달래며 500년을 지낸다. 이렇게 인고하는 세월을 보낸 뒤 손오공은 삼장을 만나 여래의 길을 따라 걷는 여행을 하게 된다.

여기서 손오공은 자아집착의 화신이다. 도를 이루는 '나'라는 주체가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중도를 상징하는 여래의 가운데 손가락에 자기 이름을 쓴다. 나 자신이 중도를 알았다고 자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도는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중도를 알았다고 자부한다면, 고약한 원숭이 오줌냄새만 진동할 뿐이다. 자아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일이 개나 원숭이가 오줌으로 영역을 표시하는 행위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손오공에게 자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라는 여래의 가르침이 내려진다. 여래의 손이 변한 오행산의 가르침, 구리물과 쇠구슬의 가르침이 그것이다. 우리의 몸은 오행의 요소로 구성된 것이므로 그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없다. 다만 나를 기준으로 이것에 호오의 감정을 내므로 구속되었다는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진정한 해방은 이 요소들이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삶의 현장에 밝게 눈뜨는 일로 일어난다. 그것을 유감없이 받아들이는 일로 일어난다.

사실 우리는 매 순간 구리물을 마시고 쇠구슬을 먹고 있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구리물, 쇠구슬이다. 지진이 일어나고, 태풍이 부는 일이 구리물, 쇠구슬이다. 나를 기준으로 보면 피하고 싶은 일이지만, 이것을 피할 길은 없다. 오는 이대로 감당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있을 뿐이다. 가는 저대로 놓아주고 내려놓는 일이 있을 뿐이다. 이렇게 확인하고 이렇게 맡겨두는 것, 이것이야말로 불교적 초월의 길이 되는 것이다.

동의대 교양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