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어 황태 동태 생태 코다리

- 상태나 어획시기에 따라 

- 불리는 이름도 많고 많아

- 난호어목지 등에 기록하기를

- '다산하여 전국에 넘치며

- 청어와 더불어 가장 흔한'

- 그래서 가난한 집 밥상에도

- 부담없이 올랐던 고마운 생선

- 지구 더워져 수온 오른데다

- 남획으로 인한 고갈 추측뿐

- 정확한 이유는 몰라

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 치며 춤추며 밀려다니다가

어떤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살기 좋다는 원산 구경이나 한 후

에지프트의 왕자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쇠주를 마실 때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가곡 <명태>(양영문 작사) 中에서

온도계의 수은주를 끌어 내리는 추위가 닥쳐오면 생각나는 물고기가 있다. 명태(明太)다.

명태는 조선 중기 이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물고기였다.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우리 바다에서 명태를 구경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아예 찾아볼 수가 없다. 그 옛날 민정중(閔鼎重, 1628~1692)이 "300년 뒤에는 이 고기가 지금보다 귀해질 것이다" 고 한 말이 딱 들어맞고 말았다.

푸른 동해에서 약 400여 년을 힘차게 뛰어놀다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린 명태. 지구 온난화에 따른 수온 상승, 남획 등이 그 이유로 거론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고 한다. 요즘 명태는 높은 몸값이 매겨진 '현상수배자'다. 명태를 발견해 신고하면 현상금을 준다고 하나 명태를 찾아 현상금을 탔다는 소식은 좀처럼 접하기 어렵다. 한때 강원도 각 포구에는 '개도 물고 가지 않는다'고 했을 만큼 많았던 것이 바로 명태다. 하지만 이 지경에 이르고 보니 왠지 씁쓸하기가 짝이 없다. 가난한 서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고,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소주를 마실 때 몸을 찢어 아낌없이 내어주던 명태, 이 사라진 동해의 전설이 되돌아오길 바라며 명태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명태만큼 우리 민족에게 친숙한 물고기도 드물다. 명태에 붙은 다양한 이명(異名)만 봐도 알 수 있다. 명태는 북어, 황태, 동태, 생태 등 다양한 이명을 가지고 있다. 청어, 대구, 조기도 우리 바다에서 흔하게 났던 물고기지만 명태만큼 이명이 많지는 않다.

문헌에서 명태라는 이름은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처음 나온다. 1652년(효종 3)의 일기에는 대구알젓 대신 명태알젓을 봉진한 일로 강원도의 해당 관원을 엄중하게 추고하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것으로 보아 명태라는 이름은 조선 전기에도 쓰였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조선 전기의 기록에는 명태라는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1530년(중중 25)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명태라는 이름은 없고 경성도호부와 명천현 물산조에 무태어(無泰魚)라는 이름이 보인다. 1884년(고종 21)에 황필수(黃泌秀)가 편찬한 의서(醫書)인 '방약합편(方藥合編)'에는 '명천에서 난다. 일명 무태어이다'라고 해 무태어가 명태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다른 사료들에서는 이견(異見)이 있어 무태어를 명태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것으로 볼 때 명태가 우리 바다에 출현한 것은 1530~1652년 사이였을 가능성이 높다.

명태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1871년(고종 8)에 간행된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의 '임하필기(林下筆記)' 에 소개된 내용이 흥미롭다. 함경도 명천(明川)에 사는 어부 중에 태씨(太氏) 성을 가진 자가 있었는데, 어느 날 낚시로 물고기 한 마리를 낚아 고을 관청의 주방(廚房) 일을 보는 아전으로 하여금 도백(道伯)에게 드리게 했다. 그러자 도백이 이를 매우 맛있게 여겨 물고기의 이름을 물었으나 아무도 알지 못하고 단지 "태어부(太漁父)가 잡은 것이다"라고만 대답했다. 이에 도백이 말하기를, "명천의 태씨가 잡았으니, 명태라고 이름을 붙이면 좋겠다"고 했다는 내용이다. 한편, 함경도 지역에서는 명태의 간에서 짜낸 기름으로 등불을 밝히곤 했는데, '밝게 해준다'는 의미에서 명태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속설도 전해온다. 어느 말이 맞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함경도 지역, 특히 명천에서 명태가 많이 났고 과거에는 알지 못한 생소한 물고기였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수천 석씩 잡힌' 친근한 생선

명태는 북어(北魚)라는 이명도 있다. 이만영(李晩永)이 1798년(정조 22)에 엮은 '재물보(才物譜)'에서 말하듯이 북어라는 이름은 북해(北海)에서 나기 때문에 생겼다. 1820년대 유희(柳僖, 1773~1837)가 여러 가지의 물명(物名)을 모아 펴낸 '물명고(物名攷)'에도 '(명태가) 북쪽 끝에서 잡으므로 북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명태는 한류성 어종으로 경북 이북의 동해안에 널리 분포하며 함경남도 연안에서 가장 많이 잡혔다.

그런데 명태가 많이 잡히고 유통이 활발해지면서 북어의 의미가 달라졌다. 어획한 명태는 할복과 세척을 거쳐 덕장에서 말린 뒤 전국으로 유통되었다. 따라서 남쪽 사람들은 싱싱한 생태가 아닌 건태만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이에 북어는 곧 건태라는 인식이 사람들에게 심어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북쪽 사람들도 건태를 북어로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서유구(徐有榘, 1764∼1845)의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 '명태를 속칭 생것은 명태, 말린 것은 북어라고 한다'고 기록된 것으로 미루어 이러한 의미 변화는 이미 18세기에도 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임하필기'에는 '이 물고기가 해마다 수천 석씩 잡혀 팔도에 두루 퍼지게 되었는데, 북어(北魚)라고 불렀다'는 내용도 나온다. 명태가 전국 각지로 유통되면서 북어(건태)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이야기다.

■춘태바리, 사태, 오태, 코다리…

명태는 어획시기, 어획방법, 크기, 저장방법, 지역 등에 따른 다양한 이명도 가지고 있다. 음력 10월 말부터 동지섣달 사이에 잡은 명태는 동태바리, 설날이 지나 2월 말에 잡은 명태는 춘태바리라고 불렀다. 4월에 잡은 것은 사태, 5월에 잡은 것은 오태라 했으며, 마지막 어기에 잡은 작은 명태는 막물태라고 불렀다. 어획방법에 따라 자망 등의 그물로 잡은 것은 망태, 주낙과 같은 낚시로 잡은 것은 조태라고 했다. 크기에 따라서도 대태, 중태, 소태라 불렀는데, 함경도에서는 대태를 왜태, 소태를 애기태라고 부르기도 했다. 부산에서는 크기가 아주 작은 명태를 노가리라고 불렀다. 저장방법에 따라 겨울 찬 공기에 얼어 빳빳해진 것은 동태, 말린 것은 북어, 얼었다 녹았다가를 반복하여 말린 것은 더덕북어(황태), 딱딱하게 말린 것은 깡태, 코에 꿰어 반쯤 말린 것은 코다리라고 불렀다. 지역에 따라서도 강원도에서 잡은 것은 강태, 강원도 간성에서 잡아 말린 것은 간태라고 했다.

이처럼 명태의 이름은 가지각색이다. 1900년대에 와서는 명태의 이명이 18가지나 됐다고 전한다. 이명이 발달한 것은 그만큼 명태가 흔했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친밀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난호어목지'에도 '명태가 다산하여 전국에 넘쳐 흐르며 우리나라 수산물 중에서 명태는 청어와 더불어 가장 많이 나는 것'이라고 기록되었을 만큼 명태는 흔했다.

'임하필기' 에도 '내가 원산(元山)을 지나다가 이 물고기가 쌓여 있는 것을 보았는데, 마치 오강(五江, 지금의 한강 일대)에 쌓인 땔나무처럼 많아서 그 수효를 헤아릴 수 없었다'고 했다. 그렇다 보니 명태는 서민들도 부담 없이 맛볼 수 있는 물고기였다.

이규경(李圭景, 1788∼?)의 '오주연문장전상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도 '여염집과 가난한 사람들까지도 마른 고기를 제사에 쓸 정도로 흔하고도 쓸모 있는 물건이다'고 기록되었을 만큼 명태는 우리 민족과 친숙한 물고기, 즉 '국민 생선'이었다.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