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연당 이양연(李亮淵, 1771-1853)은 조선 후기의 시인이다. 그는 시 '야설(野雪)'에서 '천설야중거, 불수호란행. 금조아적행, 수작후인정(穿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朝我行跡, 遂作後人程) : 눈을 뚫고 들판 길을 걸어갈 때는 모름지기 어지럽게 걷지를 마라. 오늘 내가 밟고 간 이 발자취가 뒷사람이 따르는 길이 될 터이니'라고 노래했다.

	눈길에 난 발자국. 앞선 자가 잘못된 길로 가면 뒷사람도 같은 잘못을 범한다.

이 시를 백범 김구 선생이 애송했다. 김구 선생이 애송한 시는 이양연의 시와는 미세하게 다른 서산대사의 선시 '답설야중거, 불수호란행. 금일아적행, 수작후인정(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는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가는 이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였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도덕과 윤리의 핵심은 정직이다. 정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자신의 제자나 자녀에게 항상 정직하라고 가르치고 훈계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어른이 되면 될수록, 배우면 배울수록, 출세하면 출세할수록 정직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오히려 어릴수록 더 정직하다. 어린아이들은 선생님의 가르침과 자신이 배운 것을 따라 본능적으로 바르게 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세상 사욕에 물든 어른들은 습관적으로 정직을 회피하려고 한다. 자신과 타인을 속이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분이 된다. 거짓말과 거짓 행동이 일상생활이 된다. 따라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신의 감정을 잘 감추고, 표가 나지 않게 진실을 숨기고, 거짓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실력이 좋아지는 것과 유사한 의미를 지닌다. 정직이라는 문제 앞에서 결코 순수하지 않다.

어른 중에 정직하지 못한 상위 부류가 정치인과 고위 관료다. 청문회나 국정조사가 TV를 통해서 생중계될 때 가만히 보면 이른바 이 나라 지도자와 리더라고 지칭되는 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아니다" "기억이 안 난다" "모르겠다"이다. "아기모"의 행진이다. 정말 머리가 나쁜 사람들만 모인 것 같다. 저들이 어떻게 대한민국의 지도자와 리더로 살아왔는지 또 앞으로 살아갈 것인지 정말 궁금하고 걱정이 된다. 서민과 국민보다 더 무지하고 아둔한 사람들이다. 저들의 통치를 받아왔고 또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속이 쓰리고, 삶이 슬프고, 마음이 아프다. 만약 그들이 머리가 아둔하지 않다면 정직을 상실한 거짓의 달인들이다.

어른과 지도자는 눈 덮인 들판 길을 먼저 걸어가는 선각자이다. 이들의 발자국을 아이들과 국민이 따라간다. 앞선 자들이 잘못된 길로 가면 뒤따라가는 자들도 같은 잘못을 범할 수밖에 없다. 언제 우리나라는 먼저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가는 어른과 지도자의 발자국을 따라 아이들과 국민이 걱정 없이 따라 걸어갈 수 있을까? 방정환 선생이 아이들은 어른의 선생이요, 아버지라고 했다. 요즘 세태를 보면 진실인 것 같다. 어른이 아이를 가르치거나 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들이 어른을 가르치고 있다. 도덕과 윤리의 핵심은 정직이라고.

가야교회 담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