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에서 항문까지 이어지는 소화기관
- 현대엔 달고 흡수 쉬운 공장식품 선호
- 소화 역할 점점 더 신체 외부로 이동

'다 먹고 살자는 짓이다'. 우리 부모 세대는 이런 말을 입에 달았다. 예나 지금이나 '먹고'는 간단치 않다. 입으로 먹는 음식 자체가 불과 50년 사이에 너무 달라졌다. 우리 식단에 할아버지 세대는 듣지도 못한 햄버거와 피자와 콜라가 깊게 침투했다. 길을 나서면 음식을 채운 편의점과 슈퍼마켓이 코앞에 늘어서 있다. 이들 가공 음식의 모토는 '더 달게, 더 부드럽게'이다. 열매를 모으고 짐승을 사냥하며 죽도록 뛰어다닌 구석기인들이 보면 기절초풍할 일이다.

	식품 공장에서 대량으로 식품을 가공하는 모습. 이제 인간의 소화기관이 담당하는 일을 산업화된 식품 공장에서 대신해주고 있다. 궁리 제공

300만 년 전 인간이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걸어다닐 때와 지금 현대인은 먹는 것이 달랐던 것처럼 소화기관 기능도 당연히 달랐다. 소와 같은 반추동물은 셀룰로오스가 많은 거친 풀잎과 줄기를 우적우적 잘 먹는다. 소화기관에 공생하는 장내 세균 덕분이다. 사람은 셀룰로오스를 잘 소화시키지 못한다. 저 들판에 깔린 풀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면 당장 회사를 때려치우겠다는 분들 많을 것이다. 그러나 풀은 과일이나 고기와 달리 많이 먹어야 하고 먹는 시간도 늘려야 한다. 그랬다면 인간은 문명인이 되기는커녕 고릴라나 판다처럼 하루 대부분 시간을 씹는데 보내야 했을 것이다.

사람의 소화기관은 입에서 식도와 위와 소장과 대장을 거쳐 항문으로 이어지는 통관으로 불리는, 하나의 관이다. 소화란 통관에서 음식물을 작은 덩어리로 쪼개 화학 에너지인 영양소를 우리 몸으로 가져오는 과정이다. 그렇게 소화하기 위해 침에는 전분을 소화하는 효소인 아밀라아제가 들어 있고 위장은 염산을 분비한다. 그 힘든 소화를 꼭 위장과 소장이 맡으란 법은 없다.

인간이 불을 사용하면서 소화방법도 달라졌다. 불은 음식물을 소화기관이 흡수하기 쉽도록 부드럽게 가공해준다. 불은 최초의 인간 외부 소화기관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그 덕택에 소화에 쓸 에너지를 뇌로 돌려쓸 수 있었다. 또 인간은 다양한 방식으로 음식물을 요리한다. 이 또한 위장과 소장이 할 일을 대신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사시대부터 인간에겐 요리 본능이 있고, 이제는 그 본능이 커질대로 커져 오늘의 텔레비전은 먹방 프로그램으로 넘쳐난다.

현대에 인간은 또 하나의 커다란 외부 소화기관을 가지게 되었다. 바로 '공장 생산 식품'이다. 식품회사가 우리에게 씹기 힘든 통곡식이나 단맛이라곤 없는 씁쓸한 음식을 팔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은 부드럽고 소화하기 쉬운 음식을 늘 갈구해 왔다. 수십만 년 굶주림에 시달려온 인간 본능은 그런 음식을 덥석 움켜쥔다. 저자는 그런 극단에서 인간 소화기관이 해왔던 일 대부분을 맡는 공장이 탄생했다고 말한다. 즉 공장형 가공식품은 인간 소화기관 밖에서 벌어지는 소화의 가장 현대적인 형태이다. 저자는 현대를 공장형 가공식품이 자행하는 거대한 인간 실험 현장이라 말한다.

다 먹고 '살자'며 하는 짓이지만 우리는 성인병과 비만, 심장병을 일으키는 '공장 가공식품'의 폭격에서 먼저 살아남아야 한다. 범람하는 공장제 식품으로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잘 먹고 잘 소화시키지만 커다란 외부 위장을 짊어진 것만큼 옛 방식에 익은 몸은 혼돈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달고 부드러운 음식의 마수에 걸려든 그대 호모 사피엔스여!

소설가·'작가의 드론 독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