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먹구구 행정 또 전문가 배제
- 14개월 뒤 정식으로 문 열지만
- 관장은 물론 학예사도 안 뽑아

- 개관전시회는 정체성 알릴 행사
- 보통 2~3년 전 기획하지만
- 운영주체 결정 늦어져 '뒷전'
- 제대로 된 작가 섭외될 지 의문
- "건물 외관 마트 같다" 조롱도

부산 사하구 을숙도에 들어서는 부산현대미술관은 부산시가 직접 운영하는 사업소 형태로 최종 결정(본지 지난 5일 자 2면 보도)됐다. 시는 최근 부산시립미술관 조직 안에 '(부산현대미술관) 개관준비단'을 꾸리는 등 개관 준비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오는 11월 사전 개관, 2018년 3월 정식 개관이라는 목표를 감당하기에는 남은 시간이 너무나 모자란다고 지적한다.

부산 사하구 을숙도 안에 들어선 부산현대미술관 전경. 뒤쪽으로 낙동강이 보인다. 부산시 제공

문화예술 시설이라는 '하드웨어'를 지을 때부터 기획과 콘텐츠 등 '소프트웨어'를 함께 준비하는 장기적 안목은 갈수록 중요도가 높아지는데 이번에도 부산은 이를 실현하지 못했다. 정식 개관까지 14개월 남은 부산현대미술관의 개관 준비 상황을 진단했다.

부산현대미술관의 '개관 기념전'이 허술하게 치러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개관까지 14개월밖에 남지 않았지만, 아직 관장은 물론 개관 기념 전시를 준비할 전문인력(학예사)이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부산시는 최근 정기 인사에서 부산현대미술관 개관준비단을 만들었다. 단장을 비롯해 행정직 2명, 기술직 3명 등 총 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다음 달 준공되는 부산현대미술관 건물을 시공사로부터 인수하고, 개관까지 남은 절차를 맡아서 진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개관준비단에는 개관 준비의 핵심인 '개관 기념전'을 기획할 학예사가 단 한 명도 없다. 시설과 컨텐츠 양쪽 면에서 개관 준비를 진두지휘할 관장도 없다. 시는 오는 5월을 마지노선으로 정하고, 관장 공모와 학예사 채용을 최대한 빨리 진행한다는 계획이지만, 개관까지 남은 물리적 시간이 촉박하다.

'개관 기념전'은 한 미술관의 정체성을 지역사회는 물론 국내와 세계에 공표하는 매우 중요한 전시다. 개관 전시를 어떤 주제로 어떻게 마련하느냐에 따라 미술관의 인상과 방향이 좌우된다. 이처럼 큰 기획전은 보통 2, 3년 전부터 준비에 들어간다. 개관 기념전에 참여할 만큼 인지도가 높은 작가와 그런 작가의 작품은 대개 2, 3년 정도 전시 스케줄이 꽉 차 있기 때문이다. 미술관의 보통 기획전도 1, 2년 전에 준비를 시작한다. 부산시립미술관만 해도 2017년은 물론 2018년 기획전 일정이 거의 나와 있다.

현대미술관의 늦어도 너무 늦은 개관 준비는 '예견된 참사'다. 부산현대미술관은 미술관 건립에 필요한 과정을 차근차근 밟지 않았다. 시는 미술관의 정체성과 운영방안이 구체적으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2012년 2월 건물 설계·시공사부터 선정했다. 2013년 11월 착공에 들어간 이후 약 3년간은 오직 건물 공사에만 매달렸다. 준공을 불과 8개월 앞둔 지난해 8월에서야 운영주체와 운영방안을 정하기 위한 '개관준비 및 관리운영 종합계획 연구용역'이 실시됐고 지난달 최종보고서가 나왔다.

운영주체가 정해지지 않으니 개관준비단 출범도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시는 지난해 10월 행정안전부에 부산현대미술관 개관에 대비한 인력 증원을 요청해 3명을 받아냈다. 현대미술관 정원은 총 36명이다. 행안부에서 배정받지 못한 나머지 33명은 시 조직 안에서 인력 재배치를 통해 충원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늦은 학예사 채용이 즉시 진행되지 않는 까닭이다.

울산시의 '울산시립미술관' 개관 준비를 보면 부산현대미술관의 개관 준비가 얼마나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지 알 수 있다. 2020년 4월 개관 예정인 울산시립미술관은 2015년 7월 학예관 1명, 학예사 1명, 건축직 1명으로 구성된 '시립미술관담당계'를 발족했다. 이들은 부지를 최종 결정하고, 운영방안을 연구해 지난해 7월 말 미술관 지향점을 담은 설계지침을 만들고 설계 공모를 했다. 지난달에는 일본 홍콩 등 해외 미술관 예술감독을 초빙해 노하우를 듣고 전시·운영 방안을 논의했다. 2020년 있을 개관전을 준비할 관장 선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울산에서는 나오고 있다.

지역 미술계 관계자는 "현대미술관 건물이 예술성이 부족한 '마트 같다'는 지적도 설계지침을 만드는 데 미술관 전문가가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관을 앞두고 시험가동을 하고 있을 시기에 학예사가 한 명도 없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는 "부산현대미술관 건립과 개관 준비 과정에 반복되는 부산 문화정책의 고질적 문제가 거의 담겨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시 최기수 문화예술과장은 "2018년 3월 개관에 최선을 다하겠지만, 2018년 하반기 부산비엔날레를 치르고 2019년 상반기 개관도 고려하고 있다"며 "정해진 일정이 중요하지만 개관전을 제대로 치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