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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문화현장 <25> 57세 버스커 한복희 씨의 행복

광복동 거리에 울려퍼진 샹송, 사람도 차도 멈춰 세운 목소리

  • 국제신문
  •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17-01-19 19:05:29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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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유공예가였어요
- 노래는 가슴에 묻고 살았죠
- 일을 그만둔 뒤 2012년
- '코리아 갓 탤런트'에 나갔는데
- 지독하게 내성적인 성격 탓에
- 가사를 까먹어버렸어요

- 탈락했지만 깨달았죠
- 노래할 때 행복하단 걸
- 50대에 비로소 시작됐어요
- 노래가 생업인 삶이

- 평생을 살던 서울을 떠나
- 부산에서 버스커가 됐어요
- 노래할 곳도 많고
- 팬들도 참 멋져요

"서울 인사동이었요. 길을 걷는데 샹송이 들려오더군요. 소리 나는 쪽으로 가봤죠. 노래 듣는 걸 워낙 좋아하니까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복희 씨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주저앉고 말았어요. 그만큼 노래가 좋았어요."

   
지난해 말 부산 중구 광복동 한 음악카페에서 열린 송년모임에서 맥주를 마시다 들은 이야기다. '아무리 좋기로서니 주저앉기까지야…'라고 생각했다. 이 이야기를 들려준 30대 부산 여성은 그 뒤로는 복희 씨의 팬으로 산다고 했다. 그는 "복희 씨는 2016년 10월 서울을 떠나 부산에 정착했으며 광복로에서 유명한 버스커(거리공연을 하는 가수)가 됐다"는 소식도 알려줬다.

그때 곁에 앉아 다른 사람과 얘기하던 버스커 한복희(57) 씨가 우리 쪽을 보며 말했다. "밤이 깊었으니 제가 노래할게요." 첫 곡은 에디트 피아프가 부른 샹송 '사랑의 찬가'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노래가 좋아 주저앉았다"는 말을 정확히 이해했다. 피로가 겹쳐 감겨만 가던 눈이 '똥그랗게' 뜨였다. 이런 생각이 밀려왔다. "오늘 밤, 집에는 다 갔다!"

노래가 잦아들자 복희 씨는 50대 후반에 익숙하고 안정된 생활을 던지고 버스커로 나선 삶 이야기를 조금 들려줬다. 재밌었다. 순간, 결심했다. "이 사람을 취재해야 한다." 머릿속이 팽팽 돌아갔다.

■광복로를 음악세상으로 만들다

그 만남 뒤 2주쯤 흐른 지난 13일 광복로. 추웠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니, 영상 2도. 바람이 차가웠다.오후 8시가 되자, 광복로의 용두산공원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앞에 복희 씨가 자리 잡았다. 버스커용 앰프를 놓고 스마트폰을 연결하자 공연 준비 끝. 복희 씨는 '작은 참새'처럼 화단에 앉은 채 노래했다.

부산 사람에게 무뚝뚝한 기질이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사람들은 발길을 멈췄다. 손뼉을 쳤고, 환호했다. 노래하는 복희 씨에게 커피를 사다 줬고, 버스커에게 퍽 중요한 팁박스(모금함)에 '관람료'를 연신 넣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노래하는 복희 씨 곁으로 지나가던 자동차가 서버렸다. 운전자는 차창을 내리고 노래를 들었다. 뒷차가 "빵빵" 소리를 내자 아쉬운 듯 출발했다. 이날 공연 중엔 이런 차가 두 대 있었다. 공연이 끝나자, 몇몇은 악수를 청했고 어떤 이는 "한 번만 안아봐도 되겠냐"고 말해 복희 씨를 당혹스럽게 했다. 모두 웃고 있었다.

복희 씨의 노래는 젊은 버스커들 중심의 거리공연에서는 좀체 듣기 힘든 곡이란 점이 특징이었다. 그가 풍성하고 섬세하게 부른 에디트 피아프('피아프'는 프랑스 말로 참새)의 샹송 '사랑의 찬가' '아니요,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는 듣는 이의 가슴을 무너뜨렸다. 아델의 '썸원 라이크 유'는 지극히 '한복희스러웠다'. 이글스의 '데스페라도' 가사는 애잔한 사랑 노래처럼 왔다. 그 끝 대목은 이렇다. "You better let somebody love you, before it's too late." 조금 의역하면 이렇다. "마음을 열어 사랑을 받아들여 봐요. 더 늦기 전에."

■복희 씨 스토리

   
'광복로 버스커' 한복희 씨가 지난 13일 부산 중구 광복로 용두산공원 입구에서 노래하고 있다. 꽤 추운 날씨였는데도 그는 노래에 깊이 몰입했고, 관객에게 전율을 선물했다.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오늘은 너무 추워 공연을 한 시간 반만 했어요. 평소엔 두 시간을 넘기죠. 관객도 무척 적었어요. 좀 따뜻한 날엔 관객이 참 많아요."
오후 9시 반. 공연을 끝내고, 야속하도록 차가운 바람을 피해 따뜻한 곳으로 옮겼다. 비로소 '57세 버스커 한복희 스토리'를 듣기로 한다.

"30년 동안 서울에서 섬유공예 작가로 살았어요. 노래를 정말 좋아했지만, 가슴에 담고 살았죠. 생업을 감당해야 했으니까. 계기요? 섬유공예는 화학염료를 많이 다뤄요. 그 탓에 건강이 나빠졌죠. 오래 아팠고 힘든 일은 하기 어렵겠다고 느꼈어요. 그때 영국 오디션 프로그램 '브리튼즈 갓 탤런트'에 저와 동갑인 수잔 보일이 시골 할머니 같은 모습으로 나가서 엄청난 노래로 세상을 감동시켰죠. 2012년이었어요."

수잔 보일을 들을 때마다 두근거렸다. 여전히 아팠지만, 피나게 연습해 2012년 '코리아 갓 탤런트'에 나갔다. 결과는 1단계 통과, 2단계 탈락. "지독히 내성적이었어요.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려니 떨렸고, 가사를 까먹었죠." 가객에게 치명적인 '관객 앞 울렁증'이 그에게는 있었다. 2014년 그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아시아 갓 탤런트'에 나갈 기회를 잡는다. 다시 피나는 연습. 결과는? 또 탈락. 가사를 또 까먹었다. 관객 앞 울렁증은 절벽이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깨달았어요. 연습하고 노래하면서 그렇게 행복했어요. 노래하자! 늦기 전에. 생활의 여유가 문제가 아니다. 내 삶이다." 꿈에도 생각해본 적 없는 '노래가 생업이 되는 삶'은 그렇게 조금씩 왔다. 그러면서 '코리아 갓 탤런트'에 나갔을 때 뽐내듯 노래했던 자기 모습이 엄청난 부끄러움이 되어 들이닥쳤다.

■쓸쓸한 지구별에서 행복한 삶은

2015년 11월 마침내 거리로 나섰다. 프랑스 사람이 많이 산다는 서울 서래마을의 공원에서 노래했다. 반응이 뜨거웠다. 인사동으로 갔다. 한때 섬유공예 작가로 내 집처럼 드나들던 인사동이라 길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아는 이가 볼까 잠깐 망설였다. 흥! 까짓 것. 관객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자신감이 생겼고 수입도 괜찮았다. 그런데 인사동은 단속이 너무 심했다. 불안해서 좋은 노래가 안 나올 때가 많았다.

그때 부산이 떠올랐다. 마침 부산 사는 팬이 돕겠다고 나섰다. 2016년 10월 초 복희 씨는 부산에 왔다. 광복로는 버스커에게 멋진 공간이었다. 단속도 없고, 노래할 곳은 많았으며, 관객은 멋졌다. 10월 말, 마음에 꼭 든 보수동 책방골목 근처에 방을 얻고 복희 씨는 '광복로 버스커'가 됐다.

"광복로에서 노래할 때면 몸으로 느껴요. 진심으로 부르는 노래, 진실한 음악에 다들 목마르구나. 알아보는구나." 관객 앞 울렁증은 그새 사라졌다. "좋은 쌀로 지은 정직한 밥 같은 음악을 내놓고, 관객이 주는 정직한 밥값 같은 관람료를 받아" 부산에서 음악공간을 차리고 싶은 꿈도 생겼다. 익숙한 삶을 내려놓고, 거리공연을 생업으로 삼는다는 건 무척 불안정한 삶일 수 있지만, 큰 걱정 없다. 복희 씨가 말했다. "지구라는 별에서 이보다 잘 사는 방법이 있을까요?"

버스커 복희 씨, 행복을 찾았다.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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