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적으로 마산 유명하나
- 피란시절 부산서 먼저 등장
- 국제시장 1공구 다섯 집 명맥

- 재료의 철따라, 주인장 마음대로
- 20여 가지 풍성한 안주 쏟아져
- 일상에, 삶에 지친 사람들 위로

- 30여 년 전 5000원 하던 한상
- 요즘은 기본 안주·술 3병 '3만 원'

- 어느 날은 전·구운 조기·꽃게찜
- 바지락국·굴젓·꼬막찜 오르더니
- 한날은 과메기·물메기알무침 등장

창원시 마산 일대에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통술을 파는 통술집 골목이 있다. 전주의 막걸리 골목, 통영의 다찌, 부산의 푸짐한 집 등과 함께 20여 가지 이상 풍성한 안주를 제공해 술꾼을 끌어모으는 곳이다. 따로 안줏값을 받지 않고 '술상 통째 제공한다' 해서 통술이라 한단다.

부산 통술집의 상차림. 푸짐한 데다 계절마다 새로운 안주가 추가되는 '흐뭇한' 술상이다. 사진=최원준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는 통술집은 마산에서는 1970년대 들어서 크게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의 통술집은 그보다 앞선 1950년대 등장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 전쟁으로 인한 1·4후퇴 이후 부산이 피란민 천지가 되었을 때 국제시장 신창동 2가 한 모퉁이에 창고를 빌려 개조하여 창문 몇 개를 낸 주점이 생겨났다. 어두컴컴하고 널찍한 시멘트 바닥에 빈 간장통(둥글고 큰 나무통) 10여 개를 술상으로 삼고 아무렇게나 짜 맞춘 긴 나무의자에 앉아 막걸리 반 주전자에 두부, 묵, 말린 생선 등의 안주를 놓고 피난살이 서러움을 얘기하고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를 목이 터져라 불러댔다." (주경업의 '부산이야기 99')

"통술집은 무거웠던 머리를 식히고 가볍게 오가는 대화의 장이었다. 어찌해서 통술집이라 했을까? 미군이 버린 기름통인 드럼통을 거꾸로 세워 술판을 만들어 그랬을까? 아니면 막걸리통이 통째로 오가서 그랬을까? 어쨌든 마른 명태와 마른 오징어와 두부와 깍두기 안주에 막걸리의 대중적이자 실용적인 통술집은 남포동에서 비롯되었다." (최해군의 '작가 최해군, 문단이야기')

바지락수제비국

위의 글에서 보듯 임시수도 시절 대한민국 부산에 통술집이라는 술집이 새로이 등장한 셈이다. 1974년 '경향신문' 4월 4일 자에 게재된 정년퇴직한 석학들의 회고기 '노교수와 캠퍼스와 학생'이란 연재물 중 한구동 전 서울대 약대학장의 '통술집서 떠오른 연구테마'라는 회고 칼럼에 부산 피란시대의 통술집을 기술한 대목이 있다.

'국제시장 도떼기시장 안에는 음식점들이 즐비했는데, 판잣집으로 된 통술집은 애주가의 안식처인 양 항상 술꾼들이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면서 그 통술집에서 교수들과 '막걸리심포지움' 도중 '한국인의 미맹(味盲)'을 밝혀냈다고 서술한다. 즉 '한국인들의 맛의 색맹' 연구의 단초를 통술집에서 떠올렸다는 것이다.

■부산 음식문화의 추억이자 자산

조기구이

부산은 해방 후 본국으로 돌아온 일본 귀환동포 예술가와 한국전쟁 때 피란 온 전국구 예술인이 일시에 몰려 한때 대한민국 최고의 예술도시가 됐다. 당시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은 '통술집'이나 '대폿집' 등 '문화사랑방'에서 술추렴을 하며 새로운 문화 재생산의 시간을 보냈다, 통술집은 1950년대 부산에서 문화·지식인들의 삶의 해방구가 되어 주었고, 이 통술집을 중심으로 시작된 '문화사랑방'들은 60~80년대 남포동·광복동에 널리 자리 잡았다가 1990년대부터 동광동으로 옮겨 현재 몇몇 집이 영업하고 있다.

국제시장 1공구. 이곳에는 '문화사랑방'과는 궤를 달리하지만, 통술을 파는 통술집이 있다. 일명 국제시장 '통술집 골목'이다. 서너 평 공간에 통나무 테이블 대여섯 개가 옹기종기 있고, 계절에 맞춰 맛깔스러운 안주 15~20접시 정도가 술상에 오른다. 현재 고만고만한 다섯 집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영업하고 있는데, 20~30년 전만 해도 10여 집이 저녁마다 문전성시를 이뤘다. 당시 손님이 넘쳐나는 통에 자리가 없어 돌아가거나, 가게 앞에 맥주박스와 합판으로 즉석 술상을 만들어 손님을 받을 정도였다.

고둥

이곳에서 35년 영업한 '거창집' 김정옥씨의 회고다. "잘은 몰라도 통술집이 이곳에 자리 잡은 것이 50~60년 정도는 됐을 거라예. 제가 1980년 초반부터 장사를 했는데, 먼저 하던 언니들이 모두들 20년 정도 했다고 했으니까예." 한때 이곳은 국제시장 상인부터 부산의 예술가들, 옛 시청과 법원 공무원들, 샐러리맨들까지 일상에 지친 사람들의 푸근한 사랑방이자 마음의 안식처를 자처했다. 좁은 점포에서 긴 나무 테이블을 놓고 자리 구분 없이 오는 순서대로 앉아, 하루 일상을 이야기하고 삶의 철학을 설파했다.

■국제시장 1공구 통술집 골목

대구포

오랜만에 통술집을 찾는다. 통술 한상 5000원 할 때부터 드나들었으니 현재 3만 원 시절까지 30여 년의 이력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기본 안주와 술 3병이 자리한다. 주방에서는 감자전과 고추전이 노릇노릇 맛있게 익어가고, 다른 한쪽 불에서는 싱싱한 조기가 지글지글 구워진다. 고둥, 땅콩, 번데기는 기본이고, 수제비 넣은 바지락국과 꽃게, 과메기와 굴젓. 가끔 생선회까지 올라 잔칫집 부럽지 않다. 계절에 따라 다양한 안주가 변화무쌍하게 오르는 것이 나름 재미라면 재미겠다.

겨울철 음식이 눈에 띈다. 겨울의 조갯국은 땡초를 넉넉하게 넣어 시원함과 칼칼함이 두드러진다. 출출할 땐 조갯국 안의 쫄깃한 수제비가 끼니로도 좋겠다. 나박나박 썬 무와 함께 조물조물 무친 굴젓은 겨울철 입맛 돋우는 데는 최고 반열이다. 매콤짭짤하면서도 들큰하게 고소한 맛이 그저 그만이다. 특히 알배추 위에 굴젓과 까나리육젓 등을 얹어 먹으니 출렁이는 바다냄새가 물씬 풍긴다. 몸피가 빨갛게 잘 익은 꽃게도 두 마리 접시에 앉았다.

양념새꼬막

따뜻하게 지져서 나오는 감자전과 고추전도 괜찮다. 명절에 전을 굽는 어머니 옆에서 굽는 족족 받아먹을 때의 맛이다. 바삭바삭 튀기듯 구운 조기도 고소하기 이를 데 없다. 보말고동과 쪽고동은 쌉쌀하면서도 짭조름해 배부르지 않은 안주로 계속 손이 간다. 꼬막은 쫀득쫀득하면서도 갯벌의 들큰함이 입안으로 속속들이 전해져 흥미롭다. 대추와 밤을 설탕에 재운 정과도 고급진 안주다.

매일 장을 보기에 기본 안주 외에는 날마다 조금씩 바뀌는 것도 매력이다. 취재 때문에 두어 번 연달아 가 봤더니, 여러 안주가 새롭다. 구수한 비린내가 일품인 과메기에, 꼬득꼬득 터지며 씹히는 식감이 유쾌한 물메기알무침, 씹을수록 고소한 소고기장조림이 새롭게 등장한다. 그저 흐뭇한 술상이다.

부산 현대사, 또는 부산 문화사와 함께 변화무쌍한 세월을 지켜낸 통술집들. 이들이 거친 세상에서 어떻게 사라지고 변화했는지는 논외로 하고, 이들이 우리 부산의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기록으로나, 스토리텔링으로나 남겨야 할 시점이다. 어려웠던 시절 지친 예술가들에게 '따뜻한 술잔' 한 잔 권했던 통술집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문화공간 '수이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