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생지기 임응식 작가와 함께
- 부산 사진예술 여명기 연 정인성
- 이후 지역에 머무른 정 작가와
- 서울로 간 임 작가 '다른 길'

- 시립미술관 임응식·정인성展서
- '조형미 뛰어난 생활 리얼리즘'
- 정 작가 작품세계 재조명 나서

"아버지의 사진 작품을 '개인의 기억'을 넘어 '공공의 기억'으로 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정인성 사진가의 아들 정영모 씨. 임경호 프리랜서

한국의 1세대 사진가 정인성(1911~1996) 선생의 아들 정영모(76) 씨가 부산시립미술관에 아버지 작품(디지털 인화본) 120점을 기증하겠다고 밝혀 화제가 되고 있다. 부산시립미술관은 평생을 지기로 지내며 작가, 교육자, 평론가로 한국의 사진예술 발전을 위해 살았던 임응식(1912~2001)과 정인성의 작품 각각 120점, 모두 240점 소개하는 '시간의 산책자들-임응식, 정인성' 전을 오는 26일까지 연다. 정영모 씨가 현재 전시 중인 정인성의 작품 120점을 시립미술관에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사진가 정인성의 사진작품 '1949년 부산 충무동'.

정 씨는 "아무런 조건 없이 그저 잘 보관해주기만 바라고 맡겼다. 이제 내 손을 떠났다. 후련하다"며 "120점은 아버지 작품의 정수 중 70%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유명 사진가의 작품 한 점이 수십억 원에 거래되면서 국내에서도 사진작품의 시장성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연구를 위한 사진 1세대, 1.5세대 작품의 아카이브(수집과 정리) 작업이 쉽지 않다. 시립미술관이 정 씨의 기증을 크게 반기고 고마워하는 배경이다. 현재 시립미술관이 소장한 정인성 작품은 2점뿐이다.

"아버지 전시가 시작된 뒤 일주일에 두 번씩 미술관에 오고 있어요. 관람자들이 몰입해서 작품을 감상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아 기증을 결심했죠. 유족도 세월이 지나면 작품 관리가 어렵습니다. 미술관이 한꺼번에 소장해야 앞으로 또 전시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시립미술관은 전국 네트워크가 있으니 전국과 교류해 더 많은 사람이 아버지 작품을 볼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습니다."

정인성은 경남 양산 출신으로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유학하던 시절 사진에 입문했다. 1935년 일본 동경사진학교를 졸업했는데, 부산 최초로 정규 사진학교 과정을 수학했다. 1957년부터 부산대에서 사진예술론, 1965년부터 한성여자초급대학(현 경성대)에서 사진기법, 1966년부터 동아대에서 사진학을 강의하는 등 교육자, 평론가로도 활동했다.

한창 작품 활동을 하던 1960년대의 정인성 사진가.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정인성은 임응식과 함께 '생활주의 사진'을 주도하며 부산에서 사진예술의 여명기를 열었지만, 이후 두 사람에 대한 평가는 온도 차가 있었다. 휴전 후 임응식은 서울로 활동무대를 옮겼고, 정인성은 부산에 남았다. 임응식이 '한국 사진의 개척자'로 헌사를 받은 반면, 정인성은 한국사진사에서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부산시립미술관 이진철 학예연구관은 "정인성은 인간의 모습과 삶의 풍경에 천착한 리얼리즘 계열의 '생활주의 사진'을 찍으면서도 조형미를 강조해 작품성이 높다"며 "빛을 다루는 방식이 벨라스케스나 르누아르 등 서양의 화가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정영모 씨의 마지막 바람은 집에 소중히 보관한 아버지의 필름을 제대로 보존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아버지처럼 사진가로 활동한 정 씨의 노력 덕에 정인성의 작품 원본필름은 1930년대분부터 잘 보관돼 있다. 다른 1세대 사진가의 작품보다 보관 상태가 매우 좋은 편이다. "1세대, 1.5세대 사진가의 필름과 프린트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필름을 보관할 방법을 찾지 못하면 한국 사진사의 50~60년이 사라집니다. 공공기관이 나서 이를 한 번에 모아 보존할 방법을 찾아줬으면 합니다."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