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의 호흡이 전해지는 연극은
- 사람 마음에 직접 와닿잖아요
- 연극을 보는 이의 생각이,
- 가능하다면 행동까지도 바뀌길 바랐지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존재하고 있었다. 문화예술계를 두려워한다는 자백이나 다름없다. 글 쓰고, 그림 그리고, 노래하고, 연기하는 그들을 왜 관리하고 간섭하려는 걸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처럼 무서운 힘이 또 있을까. 그런 생각 끝에 인간존재의 탐색과 저항적 글쓰기를 희곡과 연극을 통해 보여준 극작가 김문홍(72)이 떠올랐다.

■소극장에서 문학을 사유하다

김문홍 극작가가 부산 수영구 남천동 액터스소극장에서 공연이 끝난 뒤 무대에 섰다.

부산 수영구 남천동 액터스소극장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매일 극장으로 출근한다. 현재 부산공연사연구소 소장을 맡은 그는 "극장 한쪽의 작은 사무실에 연구소가 곁들여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곳에서 극장과 부두연극단의 이성규 대표와 연극 이야기를 하고, 부산공연사를 연구하고, 새로운 작품도 기획한다. 그의 사유가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사무실은 작지만, 연극 외 다른 것은 끼어들 틈이 없기에 더 넓고, 웅숭깊었다. 단원들이 돌아간 극장은 어두웠다. 그러나 텅 빈 무대 한가운데에 그가 서고, 객석에 불을 밝히고 나니 소극장 전체가 웅성거리며 살아났다. 무대 한쪽에서 배우가 걸어 나와 '김문홍의 말'을 할 것 같은 느낌이다.

김문홍은 1976년 '한국문학'에 소설 '갯바람 쓰러지다'가 당선되어 소설가로 먼저 등단했다. 이후 동화, 희곡, 연극평론 등의 분야에서 활동했다. 첫 희곡은 1980년에 발표한 '수직환상'이다. 전두환 정권 당시를 우화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현재까지 '안개주의보'(1987) '산천에 봄은 다시 오고'(1996) '세한도에 봄이 드니'(2006) '대숲에는 말(言)이 산다'(2009) '지상의 방 한 칸'(2014) 등 희곡집 5권을 냈다. 이 희곡집에 수록된 30여 편의 희곡은 부산의 여러 극단에 의해 공연된 작품이다.

40여 년간 부산의 연극 현장을 지켜온 그는 '연극의 사회적 기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연극을 보는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길 바랐고, 가능하다면 행동도 바뀌길 바랐지요. 재미있는 해피엔딩, 그런 건 드라마에서도 할 수 있는 거죠. 연극은 그보다는 생각할 거리를 주는, 관객을 좀 불편하게 하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연극은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배우의 호흡이 그대로 전해지기에 보는 사람의 마음에 직접 와 닿죠. 어쩌면 가장 선동적이랄 수도 있겠죠. 그런 연극의 사회성을 두려워하는 권력은 늘 연극을 탄압해왔어요."
■저항의 몸부림, 연극이 되다

김문홍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에서는 묵직하고도 날카로운 힘이 느껴진다. "평소에는 조용하고 온화하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글을 쓸 때면 그동안 참고 눌러 두었던 분노가 터지는 것 같아요. 마음 깊이 묻어둔 칼이 나오는 거지요." 하고 싶었던 말을 속 시원하게 썼던 작품 중에서도 그는 '저항 3부작'을 이야기했다. 정조의 문체반정에 맞선 선비 이옥을 그린 '방외지사 이옥', 실록 편찬을 위해 쓴 사초를 보려는 연산군에 맞선 사관 김정혁의 의지를 보여주는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신라 경문왕과 복두장이의 이야기를 통해 표현의 자유를 담은 '대숲에는 말(言)이 산다'이다.

"선비 이옥은 조선판 블랙리스트라 할 수 있어요. 요즘으로 치면 언론의 자유를 외친 거지요." 극작가 김문홍은 희곡 '방외지사 이옥'을 쓴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에게도 인기 높은 조선의 22대 왕 정조. 정조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같은 참신한 문장을 패관소품이라 규정하고, 기존 고문(古文)을 모범으로 삼으라고 명했다. 쓰고 싶은 대로 글을 쓸 수 없게 한 정책이다. 정책에 따르겠다는 반성문도 쓰게 했고, 자신의 문체를 버리지 않는 선비는 과거에 응하지 못하게 했다. 소통 군주, 개혁 군주의 정책이라기엔 어울리지 않는다.

'방외지사 이옥'에서 정조는 이렇게 말한다. "문체를 버리고 짐의 뜻을 따르겠느냐, 아니면 끝까지 고집하다 죽겠느냐?" 지엄한 왕명 앞에서 이옥은 "문체는 내 세계이며 내 목숨이기도 합니다. 문체를 잃음은 곧 내 마음을 잃음이니 결코 고칠 수 없소이다!"라고 저항했다.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없는 것을 억누르는 권력에 온 마음을 다해 맞서는 사람. 그런 존재가 이옥뿐일까. 그런 역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김문홍은 역사를 통해 오늘의 현실을 이야기해왔다. 그 이야기의 방식은 희곡이었고, 연극으로 전달됐다.

"소설을 썼을 때는 내 글의 독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도리가 없었어요. 하지만 내 희곡이 연극 무대에서 공연될 때, 관객들 반응을 바로 눈앞에서 느낄 수가 있는 것, 그것이 매력이었죠." 사람들의 생생한 반응. 그것처럼 뜨거운 창작 계기가 또 있을까. 문자로 쓴 이야기가 말로, 몸짓으로 살아나는 일. 그 무대를 바라보며 생각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불편한 진실'을 살아있는 말로 전하고 싶은 일. 그것이 김문홍을 오늘도 극작가로 살게 한다.

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