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과 이별할 때 눈은 다 감아도 마음은 다 열고 떠나야 한다'

- 나는 삶의 기쁨을 찾았나?
- 내 삶은 어떻게 평가될까?
- 영화가 당신에게 묻습니다


많이 보고 싶겠지만

조금만 참자.

영화 '버킷 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의 중요한 한 장면.

나태주 시인의 '묘비명' 전문입니다. 제가 '서재'로 쓰는 스타벅스 커피숍에서 책을 읽다가 만난 시입니다. 때마침 이번에 소개할 영화가 '버킷 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원제 The Bucket List)'이기도 해 시를 지어보았습니다. 저의 졸시(拙詩) '묘비명'을 소개합니다.



살아서는

가볼 수 없던 길로

가노라



다시 태어나면

이렇게 쓰련다



죽어서도

가볼 수 없는 길로

가보았노라고.



'버킷 리스트'는 롭 라이너가 감독했습니다. '이승과 이별할 때 눈은 다 감아도 마음은 다 열고 떠나야 한다'는 메시지를 잘 영상화한 작품입니다. 롭 라이너는 집 떠난 네 소년이 여행을 통해 내면의 아픔을 서로 어떻게 치유하는지를 그린 '스탠바이 미(Stand By Me)'로도 유명하지요.

먼저, 주요 무대인 병원 응급실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괴팍한 노인 에드워드(잭 니콜슨)가 비서를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화면 가리니까 비켜." 노인은 그 병원의 소유주인데요, 야구를 보는데 비서가 TV 화면을 가리자 그렇게 쏘아붙인 겁니다. 영어는 'You are blocking my view'입니다. 그가 허투루 뱉은 대사일까요?

그림=헌즈 작가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가난한 길거리 철학자 디오게네스에게 찾아갔지요. '무슨 청이든 들어줄 테니 가르침을 달라'고 했고요.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이렇게 말했지요. "You are blocking my sun(당신이 햇볕을 가리고 있으니 비켜서 주시오)." 그 뜻은 'Stand out of my sun'과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만족하기, 욕심 없이 살기, 아무것도 부끄러워 않기'를 삶의 목표로 삼은 디오게네스는 명예도 부도 존경도 바라지 않았기에 그런 식으로 대왕의 청을 거절한 것이지요.

디오게네스와는 정반대 인물이 에드워드입니다. 억만장자인 그는 부와 명예와 존경이 삶의 최우선 목표입니다. 디오게네스의 명언을 패러디한 건 그가 넉살 좋은 유머 감각의 소유자임을 내비친 것이지요. 충격적이게도 그는 반년밖에 못 살 암 환자입니다. 그의 병실엔 카터(모건 프리먼)가 입원해있습니다. 45년간 자동차 정비공으로 성실히 살아온 그도 암 환자입니다. 길어야 1년 살 수 있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처럼 무엇 하나 부러울 것 없는 에드워드와 디오게네스처럼 청빈한 카터는 의기투합해 '버킷 리스트'를 만듭니다. '가지 않은 길들'을 되돌아보며 후회하는 대신 더 늦기 전에 '가보지 않은 길들'을 향해 떠나자며 '죽기 전 꼭 하고 싶은 것들의 목록'을 짠 것입니다.

이런 영어 명문장이 있지요. "It is never too late to be what you might have been." 영국 소설가 조지 엘리엇의 명구인데요, 함의는 이렇습니다. '당신이 꿈꾸었던 그 무엇이 되기 위해 나이는 결코 안 중요합니다.' 이들 노인은 '꿈만 꿔보고 해보진 못한 것들'에 도전합니다. 눈물 쏙 빠지게 웃어보기, 문신 새기기, 스카이다이빙, 피라미드에 올라가 보기, 가난한 이웃에게 도움 주기, 이 세상 최고의 장관(壯觀)을 구경하기' 등…!

그들의 극적인 여정을 영상으로 감상하는 건 오롯이 독자의 몫이기에 군더더기 설명은 생략합니다. 다만, 자유연애가 에드워드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인과 키스하기(Kiss the most beautiful girl in the world)'를 목록에 추가했다는 정보는 밝혀둡니다. 그 야무진 꿈도 실현될까요?

여행을 떠나기 전엔 45년 세월이 마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smoke through a keyhole)'와도 같게 흘렀다며 한탄했던 그들이 마침내 가슴을 꽉 채워 돌아옵니다. 그 벅찬 가슴을 안고 카터는 가족에게 돌아갑니다. 한편 가슴에 품을 가족이 없는 에드워드는 남몰래 흐느낍니다. 네 번 결혼하고도 모두 헤어졌고 자식으로는 딸 하나만 얻은 그는, 자기가 그토록 반대한 결혼을 밀어붙인 딸과도 연을 끊었기 때문입니다.

얼마 후 에드워드는 카터의 부음을 전해 듣습니다. 받아놓고도 안 읽고 아껴둔 친구의 편지도 개봉합니다. 딱 한 줄입니다. '삶의 기쁨을 찾게나(Find joy in your life).' 이집트에서 카터가 에드워드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입니다. "고대 이집트에선 천국의 입구에서 신이 두 개의 질문을 하지. '삶의 기쁨을 찾았나(Have you found joy in your life)?' '남에게 기쁨을 주었나(Has your life brought joy to others)?'"

"우리들 각자의 삶의 총량은 어떻게 평가될 수 있을까요?" 이 영화는 우리에게 그런 숙제를 남겨둡니다. 우리는 다양한 답의 하나를 카터의 생전 독백에서도 찾을 수 있겠습니다. "'당신'을 기억하는 이들의 평가가 '당신'의 삶의 총량을 말해줍니다." 에드워드는 카터의 장례식장에서, '지난 삼 개월간 함께 해준 카터가 자기의 삶에 진정한 기쁨을 주었다'고 친구의 삶을 평가합니다. 에드워드에 대한 친구의 평가는 가려둡니다.

이제 제가 꼽는 결정적 한 장면을 소개할 차례입니다. 에드워드가 '이집트 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몸소 행하기 위해 길을 나선 장면인데요, 어딘가에 찾아간 그가 무릎을 꿇습니다. '괴팍했던' 노신사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인과 키스하려는' 동작입니다. 과연 상대는 누구일까요?


★닮은꼴 이야기와 감동을 위해 꼭 읽을 책(must-read)으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The Hundred-year-old Man Who Climbed Out of the Window and Disappeared)'을 추천합니다.


외화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