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법적 복제품일 뿐

- "원작의 아우라 넘어설 수 없어
- 에디션 번호 적고 사인 해야 가치
- 원작 개념 구현 여부 논란 가능성"

# 문제될 것 없다

- "타 작가도 사후제작 사례 있어
- 쉐퍼도 크게 만들기 원한 작품 "

# 공공미술로 부적합

- "시민이 공감할 수 없는 게 문제
- 왜 쉐퍼여야 했는지 타당성 없어"

'수영강변 일원 문화예술환경 조성사업'으로 설치된 프랑스 예술가 니콜라스 쉐퍼(1912~1992)의 조형 작품 'LUX 10-Busan'은 쉐퍼의 사후에 그가 남긴 설계도를 바탕으로, 국내에서 원본보다 확대해서 제작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가치에 관한 논쟁(본지 지난 22일 자 21면 보도)이 점화하고 있다. 논쟁의 축은 크게 두 가지다. 이같은 작품이 예술작품으로서 과연 어느 정도 가치를 지니는가. 그리고 이런 성격의 작품은 공공예술 프로젝트에 적절한가.

부산 수영구 수영강변에 설치된 니콜라스 쉐퍼의 'LUX 10-Busan'. 서정빈 기자 photobin@kookje.co.kr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는 지난해 하반기 부산 수영구로부터 민간 위탁을 받아 '수영강변 일원 문화예술환경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헝가리 출신 프랑스 작가 쉐퍼의 작품 등 국내외 조각품 5점을 수영강변에 설치하는 데 9억 원을 투입하는 사업이다.

지난해 12월 17일 첫 조각품으로 쉐퍼의 'LUX 10-Busan'이 설치됐다. 쉐퍼는 '인터렉티브 아트(Interactive Art)'라 불리는 시네틱 아트와 사이버네틱 아트를 선도한 예술가다.

논쟁은 이 작품이 원작의 설계도를 바탕으로 국내 업체가 제작한 작품임이 알려지면서 시작됐다.

'LUX 10-Busan'은 부산비엔날레조직위·수영구가 쉐퍼 유족에게서 저작권을 사들여 높이 약 2m인 원작 'LUX 10'을 높이 14m로 변형한 작품이다. 단, 부산비엔날레조직위는 "쉐퍼 유족이 지정한 프랑스인 건축가가 현장에서 감리했다"고 설명했다.

일부 비평가는 이 작품이 원작자가 타계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유족에게서 저작권을 구입해 만드는 절차를 거쳤다 해도, 그 결과는 "'합법적인 복제품'을 넘어서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장동광 미술평론가는 "작가 사후 그의 회화나 조각을 다른 사람이 모사 혹은 주조, 제작했다면 그것은 원작의 페이크(fake) 즉 짝퉁이고, 적어도 합법적 위작이고, 유일성의 배반"이라며 "원형틀에 의해 주조된 동일한 형상의 주물이라도 작가가 지휘, 감리, 사인하지 않은 복제조각품의 세부적 디테일, 색상, 전체적인 톤은 원작의 아우라를 넘어설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영준 큐레이터(김해문화의전당 예술정책팀장)는 "작가가 아무리 유명하다고 하더라도 사후에 제작했다면, 작품으로서 가치가 없다"며 "판화는 연필로 에디션 번호를 남겨야 하고, 조각도 에디션 번호를 적고 사인을 해야 가치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큐레이터는 또 "사후에 제작한 작품이라면 이를 적극적으로 명기했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작가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상태에서 원작의 크기를 변형한 것이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국민대 최태만(미술학부) 교수는 "전체적으로 논쟁 소지가 있어 단순하게 판단하기 힘든 문제"라면서도 "단, 원작이 확대되면서 원작의 특징이나 예술적 가치가 제대로 지켜졌는지, 원작에서 추구한 개념이 제대로 구현됐는지는 논란거리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LUX 10-Busan'이 원작과 같은 가치를 가진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신라대 도태근(미술학과) 교수는 "저작권을 합법적으로 구입했고, 한국 조각가 작품도 사후 제작 사례가 있다. 조각은 처음에 작게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확대하는 경우가 흔해 원작을 확대한 것은 문제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쉐퍼 작품을 프랑스에서 직접 유치한 임동락 부산비엔날레조직위 집행위원장은 "로댕 사후에 (로댕이 남긴 틀로 프랑스 정부가) 조각품을 제작해 각국에 줬다"며 "쉐퍼가 조그마한 작품을 하던 사람이 아니다. 'LUX 10'도 크게 만들기를 원하던 작품 중 하나였다"고 반박했다.

국내 미술품 경매업체와 유명 조각가 유족 측에 확인한 결과 작가 사후에도 조각품이 제작되는 사례가 있다. 하지만 미술시장에서 유통된다 해서 예술적 가치를 타당하게 인정받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2014년 미국 뉴욕에서 '브랑쿠시 논쟁'이 벌어졌다. 뉴욕 '폴 카스민 화랑'은 2013년 말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 작품전을 열었다. 출품작 중 5점이 작가 사후에 원본 주물(cast)로 주조한 것이 알려지자 진품으로서 가치에 관해 비평가와 언론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핵심은 작가가 예술품을 추가로 창작하기를 원했는지 확인할 수 없고, 마무리나 표현 등에서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 경우에도 사후 제작 작품은 미술 시장에서 그 가치는 원작보다 낮게 매겨졌다. 쉐퍼의 작품은 작품을 확대하는 '변형'도 거쳤다.

이러한 논란 자체가 이번 사업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는 지적도 있다. 사적인 소장을 위해 미술시장에서 유통되는 차원이 아니라 공적 예산을 들여, 공공의 장소에 설치하는 공공미술이라면 그 취지에 걸맞은 작품을 선정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철학자이자 미학자인 이지훈 필로아트랩 대표는 "복제품이라 해서 의미가 없지는 않다. 미키 마우스나 에펠탑 등 대중예술 복제품은 때와 장소에 따라 관광요소 등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 복제품('LUX 10-Busan')은 공공예술에서 중요 요소인 일반 시민의 관점에서 폭넓게 공감하거나, 널리 알려진 작품은 아니다. 이를 공공의 공간에 놓는 게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시민 입장에선 '의미를 찾기 힘든 복제품'"이라고 비판했다.

'수영강변 일원 문화예술환경 조성사업'의 나머지 4점은 작가추천위원회 심의를 받는다. 국내 작가는 8명, 해외 작가는 4명을 추천받아 각각 2명을 선정한다. 쉐퍼 작품은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 취지로 임 집행위원장이 직접 유치해 따로 심의를 받지 않았다. 지역 미술계 한 인사는 "한불수교의 의미로 추진한 공공적 사업이라면 프랑스 측과 교감하면서 부산과 수영강변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공공예술작품을 선정하는 과정을 거쳤으면 된다. 왜 쉐퍼여야만 했는지 타당성을 느끼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